“삼성전자 기술진을 빼오면 (중국 지방정부의) 투자를 받을 수 있다.(중국 창신메모리반도체)”
내년 60조 원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는 중국 창신메모리의 비약적인 성장 배경에는 한국 기술진의 불법적인 기술 유출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창신메모리로 이직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첨단 D램 공정기술을 빼돌린 전직 삼성 임직원들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이 추정하는 국부 유출액만 최소 수조 원에 달하는 반면 기술을 빼돌린 일당들은 많아야 5년 안팎의 실형에 그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 및 재계에서는 핵심 기술 유출자의 형량을 강화한 ‘경제간첩죄’를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김윤용)는 전직 삼성전자 부장인 A 씨를 비롯해 전 삼성 임직원 5명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국외누설 등) 및 산업기술보호법(국가핵심기술국외누설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23일 밝혔다. 삼성에서 창신메모리로 이직한 개발팀 직원 5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A 씨는 지난해 1월 관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져 2심에서 징역 6년이 선고됐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통해 추가 기소했다. 한편 중국에 머무는 핵심 피의자 B 씨 등 2명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다만 중국 정부에서 이들에 대한 비자를 계속 연장해 실제 신병을 확보할지는 미지수다.
중국 창신메모리는 중국 지방정부와 중국 반도체 설계회사의 출자를 통해 2016년 설립된 중국 최초이자 유일한 D램 반도체 제조기업이다. 삼성 전 임직원들이 유출한 기술은 10㎚(나노미터·10억분의 1m)대 D램 양산 기술이다. 이 기술은 삼성이 5년간 1조 6000억 원을 쏟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공정기술이다.
창신메모리는 당시 설립된 신생 반도체 제조 기업으로서 핵심 과제는 공정 기술 확보였다고 알려졌다. 설립 초기 수율이 매우 저조했기 때문에 누적 적자가 계속됐고 삼성·SK하이닉스와 비교해도 가격 경쟁력 격차가 상당했다. 창신메모리는 이 같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공정 전문가들을 적극 영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팀 관계자는 “창신메모리는 삼성 기술진을 데리고 오면 중국 지방정부 등으로부터 추가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정황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창신메모리는 이 같은 경영난에도 당시 삼성의 전현직 임직원들에게 큰 혜택을 제공하며 이직을 권했다고 한다. 최고위급 인사의 경우 연봉만 30억 원 안팎에 달했고 일반 임직원들도 삼성전자 퇴직 시점의 연봉보다 2~3배 많이 제시된 것으로 조사됐다. 또 1년 연봉에 해당하는 사이닝보너스(입사 축하금)와 주거비와 자녀들의 국제학교 등 교육비도 제공됐다.
창신메모리는 설립 직후 A 씨를 개발실장으로 영입했다. 취업금지 기간이 있기 때문에 창신메모리는 자회사로 비료회사를 만들어 A 씨 등 삼성 출신 임직원을 이 비료회사로 영입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A 씨는 10나노대 D램 공정 기술을 가져오기 위해 공정별로 핵심 인력 리스트를 만들어 영입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연구원이었던 B 씨는 D램 공정 핵심인 PRP(Process Recipe Plan) 정보를 자필로 베껴 회사의 의심을 피했다. 공정 기술을 확보한 뒤 창신메모리는 삼성 임직원들을 추가로 영입해 D램 개발에 착수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 협력업체를 통해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정 기술도 추가로 확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A 씨 등 일당의 적극적인 기술 유출로 인해 창신메모리는 설립 초기 경영난에서 최근 글로벌 D램 점유율 기준 4위권 반도체 회사로 올라섰다. 2023년 중국 최초이자 세계 4번째로 10나노대 D램 양산에 성공했고 지난달에는 프리미엄급 D램도 공개하며 삼성과 SK의 기술력도 거의 따라왔다는 평가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결과 창신메모리는 세계 최고 수준 D램 공정기술을 확보해 인공지능(AI) 칩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내년께 목표로 시가총액 기준 60조 원 규모(3000억 위안)의 상장도 준비하고 있다.
산업기술보호법 등 관련 범죄에 대한 양형은 많아야 5년 안팎이라는 점에서 재계에서는 경제간첩죄 등 더 강한 처벌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창신메모리는 수조 원 규모의 이익을 봤는데 실무상 형량이 매우 낮은 것이 현실”이라며 “기술을 유출한 피고인들이 초기에 받은 연봉은 환수하기 어려운 법적 문제도 많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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