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 시간) 실시된 아르헨티나 중간선거에서 우파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자유전진당(LLA)이 예상 밖의 압승을 거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여당이 승리할 경우에만 아르헨티나에 대한 금융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압박했던 것이 막판 표심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면서까지 밀레이 대통령을 지원한 배경에는 중남미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27일 아르헨티나 선거 당국에 따르면 하원의원 선거에서 개표율 99% 기준 집권 여당 자유전진당이 40.68%, 좌파 페론주의 야당 연합은 31.70%의 득표율을 올렸다. 상원에서는 각각 42.12%, 28.41%를 득표했다. 전국 24개 모든 주에 후보를 낸 여당과 달리 야당은 14개 주에만 출마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여당의 압승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하원(257석)의 절반인 127석과 상원(72석)의 3분의 1인 24석이 선출된다. 선거 당국에 따르면 자유전진당은 이번 선거 결과 하원에서 총 64석, 상원 13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화주의제안당(PRO) 등 범여권까지 합치면 하원에서는 110명 안팎을 확보해 대통령이 야당 입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3분의 1(86명)을 여유 있게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 결과를 놓고 주요 외신들은 예측하지 못했던 압승이라는 평가를 공통적으로 내놓고 있다.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공공지출을 삭감하는 등 고강도 긴축정책을 통해 300%에 달하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30%대까지 낮췄다. 대신 실업률과 공공요금이 폭등하며 시민들의 원성을 샀다. 최근에는 물가 안정을 위해 환율 방어에 외환을 대거 투입하다 보유액이 바닥나면서 페소 폭락 사태가 벌어졌다. 여동생 등 측근들까지 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며 밀레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달 들어 집권 이래 최저치인 39.9%까지 추락했다.
밀레이 대통령이 이 같은 열세를 뒤집고 이번 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쥔 배경에는 ‘트럼프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 200억 달러(약 28조 7000억 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등 구제금융을 제시하며 ‘선거에서 여당이 지면 없던 일’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번 승리로 트럼프 지원이 확실시되면서 아르헨티나 정부는 일단 숨을 돌리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선거 직후 아르헨티나 페소는 달러 대비 9% 이상 강세를 보이며 약세에서 벗어났다. 밀레이 대통령은 선거 결과가 발표되자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타락을 버리고 전진을 선택했다”며 개혁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밀레이 정권을 전폭 지원하는 데는 중남미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크다. 중국은 최근 중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을 비롯해 콜롬비아·베네수엘라 등 좌파 국가들과 부쩍 밀착하고 있다. 특히 브라질이 최근 미국으로부터 55%의 관세를 부과받자 브라질산 소고기·커피 수입을 대량 늘리고 미국산 대신 브라질산 대두를 수입하는 등 구원투수로 나서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남미에서 중국의 입김을 차단하기 위해 군사력 동원도 불사하고 있다. 미군은 베네수엘라의 마약 거래를 명분으로 인근 상공에 폭격기와 전투기를 동원한 무력 시위에 나섰고 24일에는 주변 해역에 항공모함까지 배치했다. 최근에는 미 중앙정보국(CIA)을 동원한 지상 작전을 개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또 좌익 반군 게릴라 출신인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을 “불법적인 마약 지도자”라고 지칭하며 콜롬비아에 대한 원조 중단 및 관세 인상 방침을 밝혔다. 각각 올해 말과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있는 칠레와 페루도 미중 패권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이 자국의 뒷마당으로 여기는 중남미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밀어내기 위한 외교전에 돌입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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