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매수 경쟁 과정상 방어적 매집이 시세조종에 해당하는 지에 대한 첫 법원 판단이 나왔다. 검찰은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주식 매수를 이른바 ‘고정용 시세조종’이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새 판례가 제시된 만큼 항소가 제기됐을 경우 카카오·검찰 사이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15부(부장 양환승)는 지난 22일 시세조종이 성립하려면 인위적·비정상적인 매매 형태가 존재하고 주가를 조작하려는 명확한 목적이 있으며 이를 위한 조직적 공모가 입증돼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사건에서 세 요건 모두 충족되지 않았다는 게 법원의 결론이다. 검찰은 카카오와 원아시아파트너스가 SM엔터 주가를 인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고가매수, 물량소진, 종가관여 등 전형적인 시세조종 수법을 반복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먼저 고가매수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카카오와 원아시아의 거래가 당시 시장 상황에서 정상적인 매수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시세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려는 의도나 반복적 패턴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량소진 혐의 역시 인정되지 않았다. 두 회사의 거래가 단발적이었고 매도 잔량을 반복적으로 제거하는 등 인위적 부양 의도를 뒷받침할 정황이 없다고 판단했다. 종가관여 혐의도 무죄로 결론 났다. 원아시아의 종가 직전 매수가 일회성에 그쳤고 카카오 역시 공개매수 마감 직전 이미 주가가 충분히 상승한 상태였다는 이유에서다.
공모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검찰이 제시한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 외에는 김 센터장이나 배 전 대표가 공모에 가담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었고, 해당 진술 역시 별건 수사 과정에서 압박 속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반면 카카오가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견제하기 위해 SM엔터 주가가 공개매수 가격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장내 매수를 집중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주가 부양이 아니라 일정 수준을 유지하려는 ‘시세 고정형 조작’으로 봐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검찰은 카카오의 대량 매집이 시장에 강한 신호를 주어 투자자들의 매수세를 자극했고, 이로 인해 일반 투자자들이 이를 정상적인 거래로 인식하면서 주가가 왜곡됐다고 보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이번 사건이 일반적인 시세조종 사건과 성격이 달라 항소심에서 판단을 다시 받아볼 만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영권 분쟁과 공개매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뤄진 매집 행위가 정상적인 경쟁으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시세에 대한 인위적 개입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 법원이 구체적으로 판단한 사례가 지금까지 없었다. 지난해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 영풍 간 공개매수 과정에서도 유사한 의혹이 제기돼 금융감독원에 진정이 접수됐지만 실제 조사나 제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경영권 인수를 위한 방어 목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시장가격 형성 과정에 인위적으로 개입했다면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행위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며 “법원이 이를 단순한 경쟁 행위로 본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해석”이라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무죄 판결에 공소 유지 과정의 한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의 부장검사와 평검사 상당수가 특검 파견 등의 이유로 주요 공판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면서 사건의 구조와 증거 논리를 재판부에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가조작 사건의 특성상 수사 담당 검사가 공판에서도 직접 논리를 전개해야 설득력이 높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그 과정이 다소 미흡했던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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