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지하에 숨어서 일하던 문신사들에게 드디어 빛을 볼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문신에 거부감을 지닌 분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임보란 대한문신사중앙회장은 9일 서울 은평구 중앙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신사법’ 통과의 의미에 대해 “국내에서도 문신사들이 처음으로 간판을 내걸고 떳떳이 영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국회는 지난달 25일 본회의를 열어 국가자격증을 소지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허용한 문신사법을 통과시켰다. 1992년 대법원이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이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놓은 후 33년 만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불법으로 여겨지던 문신사들의 활동이 합법적 직업 활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대한문신사중앙회는 전국 60개 지역에 지부를 둔 회원 수 2만 명 규모의 국내 최대 규모의 문신사 단체다. 임 회장은 2014년부터 헌법소원과 입법 청원 등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 합법화를 위해 앞장섰다. 남편과 딸까지 온 가족이 문신사로 일하고 있다는 그는 “2014년 문신 업소를 운영하던 중 처음으로 의료법 위반으로 단속돼 처벌을 받게 되면서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당시에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보다 경찰 조사를 받는 내내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의료인 이외의 문신 시술 행위는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 행위 등 금지) 위반으로 처벌돼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임 회장은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었는데도 법과 제도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생겨난 문제였다고 짚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문신 시술을 의료 행위로 규정한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며 “불법으로 규정한 문신 업소들이 문신서비스업으로 사업자를 내 세금을 납부하고 심지어 코로나19 손실보상금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신사법 제정에 이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문신사들이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도록 법적 투쟁을 이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비의료계 문신 시술자는 35만 명, 이용자는 1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의료인을 통한 치료 목적의 문신 시술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임 회장은 문신사법 입법 과정에 대해 “처음에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심정으로 뛰어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활동 중에 만난 국회의원이나 판사들도 눈썹 문신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문신 시술이 의료인들만의 영역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됐다”면서 "눈썹 문신을 의료인을 통해서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해 문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를 위해 문신사들이 먼저 자정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대한문신사중앙회는 법 통과에 앞서 위생 교육 의무화, 보호자 동의 없는 미성년자 시술 금지, 허가받은 재료 외 사용 금지 등을 담은 문신사 직업윤리강령을 선포했다. 그는 “핍박받던 문신사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면서 "그러려면 문신사 스스로가 윤리의식을 갖춘 전문 직업인으로 거듭나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전문가 집단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무분별한 문신 시술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전했다. 문신사법이 본격 시행되기도 전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적인 시술이 자칫 문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확산을 불러올 수 있어서다. 그는 “여전히 국내에서 문신은 의료행위지만 예외적으로 문신사 국가면허를 취득한 사람에게 시술을 허용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문신사법이 자칫 ‘문신금지법’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달라”고 문신사들에게 당부했다.
임 회장은 법 통과에 따라 문신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문신(타투)을 산업적으로 육성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한국인들은 워낙에 손기술이 좋기 때문에 문신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해외에서 활동하며 아티스트의 수준에 오른 문신사들도 여럿”이라며 “문신 역시 K뷰티의 한 영역으로 얼마든지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타투를 관광 상품으로 만들면 시술을 받으러 한국을 찾는 해외 여행객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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