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7월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10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여행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바가지 요금’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인기 콘텐츠를 내세운 분식 세트부터 택시 요금, 전통시장까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과도한 가격 책정이 잇따르며 ‘관광 강국’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지자체가 뒤늦게 제도 정비와 단속에 나서고 있으나 근본적인 신뢰 회복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외국인만 먹을 듯”…3만 8000원짜리 분식 세트
에버랜드가 넷플릭스와 협업해 선보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테마존’은 개장 닷새 만에 1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지만 이곳에서 판매되는 ‘케데헌 분식 세트’의 가격이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에버랜드 내 분식 식당 ‘스낵 버스터’는 매장 전체를 케데헌 콘셉트로 꾸미고 관련 캐릭터를 활용한 세트 메뉴를 판매 중이다. ‘헌트릭스 세트’는 떡볶이·김밥·순대·닭강정·농심 라면 소컵이 포함돼 있으며 가격은 3만 8000원이다. ‘사자보이즈 세트’ 역시 스리라차 마요 떡볶이·어묵·닭강정·주먹밥 구성에 3만 6000원이다. 구매 시 케데헌 포스터 1종이 증정되지만 소비자 반응은 싸늘하다. “2만 원짜리 포스터를 사면 분식이 딸려오는 구성”, “IP(지식재산권) 값이 금값” 등의 비난이 이어졌고 “미국에서 만든 콘텐츠라 관세가 붙은 것 아니냐”는 풍자까지 나왔다.
명동~홍대 ‘따따따블 요금’…외국인 울리는 택시
택시 바가지 문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달 일본 TBS 취재진은 관광객을 가장해 명동에서 홍대까지 택시를 탑승했다가 네 배에 달하는 요금을 청구받았다. 약 10km 거리로 보통 1만 2000원 안팎이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해당 택시 기사는 미터기를 끄고 “차가 많이 막힌다”는 이유를 대며 4만 5000원을 요구했다.
심지어 “1인당 1만엔(한화 약 9만 4000원)을 주면 카지노에 데려다주겠다”거나 “유흥업소를 소개해주겠다”는 제안을 하며 연락처를 요구하기도 했다. 승객이 영수증을 요청하자 “없다”며 거부했고 단속에 적발되자 “손님을 1시간 기다렸다”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서울시는 명동·강남·이태원 등 관광객 밀집 지역에서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피해 사례는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7월부터는 영어·중국어·일본어가 가능한 기사가 운행하고 고정 요금제·카드 결제가 가능한 ‘인터내셔널 택시’가 명동 일대에 배치됐다.
전 한 접시에 1만5000원…‘바가지' 논란의 광장시장
외국인뿐만 아니라 내국인까지 즐겨 찾는 전통시장도 바가지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 2023년 서울 광장시장에서 판매된 모둠전 한 접시가 1만 5000원에 달하는 데다 양도 적고 추가 주문을 강요하는 사례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카드 결제를 거부하고 계좌이체를 요구하는 등 불공정 영업 행태까지 드러났다.
서울시는 결국 해당 업주에게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고 시장 내 거래 질서 확립에 나섰다. 메뉴판 옆에 정확한 중량을 표시하는 ‘정량 표시제’, 상인들과의 ‘사전 가격협의체’, ‘미스터리 쇼퍼’ 제도를 도입해 가격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를 시행했다. 예를 들어 육회 가격을 ‘200g 1만 9000원’, ‘300g 2만 8000원’ 식으로 명확히 표시하도록 한 것이다.
추석 앞두고 정부도 ‘바가지 단속’ 총력
중국 단체 관광객 무비자 입국과 K콘텐츠 열풍으로 외국인 관광 수요가 급증하자 정부도 ‘바가지 단속’에 팔을 걷어붙였다. 김대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추석 연휴를 앞둔 2일 명동과 롯데면세점을 직접 찾아 가격 표시제 이행과 품질 관리 실태를 점검했다.
김 차관은 “명동은 한국 관광의 상징인 만큼 바가지요금 등 불편 사항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 달라”고 당부하며 최근 외국인 불편을 가중시킬 수 있는 혐오 시위 상황에도 대비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관광업계는 아직 무비자 정책 효과가 매출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중국 내 2·3선 도시 관광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류와 K-콘텐츠의 인기, 무비자 정책 등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여전히 바가지라는 악습이 한국 관광의 발목을 잡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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