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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다시보기] 단테의 조각배

신상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외젠 들라크루아의 <단테의 조각배>. 루브르 박물관 소장




“지옥의 문은 모든 희망을 버린 자들에게 열려 있다.” 단테 알리기에리가 저술한 중세 문학의 걸작 ‘신곡’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지옥은 단순히 육체적 고통의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잃은 절망의 상태를 상징함을 상기시키는 문구다.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죽음 후 인간 영혼의 여정과 구원 과정에 관해 탐구하는 단테의 서사시는 서구 많은 작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제공했다. 특히 19세기 낭만주의 화가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우의적 여행담의 형식을 지닌 이 작품에 크게 매료됐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단테의 조각배’는 1822년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의해 제작됐다. 당시 22세의 무명 화가였던 들라크루아의 첫 번째 살롱전 출품작이자 그의 명성이 시작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경제적인 이유로 작품 제작에 필요한 모델을 구할 수 없었던 화가가 루브르에 전시된 대가들의 그림들을 모사하며 단 세 달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 표류하는 영혼들의 처절한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주제의 독특함과 아카데미 규범에서 벗어난 들라크루아만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인해 화단의 찬사를 받았다. 루벤스풍의 화려한 색채 기법으로 지옥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려냈다는 이유로 ‘벌 받는 루벤스’라는 별칭이 붙여지기도 했다.



화면 중앙에는 작은 조각배에 올라탄 단테와 시인 푸블리우스 베르길리우스가 등장한다. 이들 옆에서 격정적인 자세로 노를 젓는 인물은 분노의 화신으로 알려진 플레기아스다. 이 지옥의 순례자들은 분노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죄를 저지른 영혼들로 가득 찬 스틱스 강을 건너고 있다. 성난 얼굴로 서로의 살점을 물어뜯던 영혼들이 단테의 조각배에 매달려 고통의 나락을 빠져나가려 몸부림치는 그림 하단의 모습은 이 작품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애절함으로 몸이 뒤틀린 영혼들, 그들의 거친 몸짓으로 파생된 하얀 물보라, 그리고 치솟는 붉은 불길의 파장은 이들이 처한 고통의 강도를 가늠케 한다. 지옥은 희망이 상실된 공간이며 분노와 광기의 세계에는 위로도 없고 피난처도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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