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쇼헤이(31·LA 다저스)가 펜웨이 파크 담장을 넘겨 홈런 1개 차로 따라붙자 몇 시간 만에 칼 롤리(29·시애틀 매리너스)가 역시 홈런포로 응수했다. 오타니가 ‘슈퍼스타’라면 롤리는 ‘슈퍼메기’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홈런왕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오타니는 27일(한국 시간) 보스턴 레드삭스 원정(2대4 다저스 패)에 1번 지명타자로 나서 1회 선두 타자 홈런을 쏴 올렸다. 시즌 38호. 5경기 연속 홈런으로 구단 타이기록을 세운 뒤 한 경기 침묵하고 또 가동한 홈런포다. 39홈런의 롤리를 1개 차로 압박했다. 하지만 2시간쯤 뒤 LA 에인절스 원정(7대2 시애틀 승)에 나간 롤리가 2대2로 맞선 6회 역시 솔로포를 뿜어 다시 2개 차로 달아났다. 시즌 40호. 7월이 끝나기 전에 40홈런 고지를 밟은 포수는 MLB 역사상 롤리가 처음이다. 스위치 히터로 이 기록을 작성한 것도 역시 최초다.
지난해 MLB 홈런왕 전쟁이 에런 저지(33·뉴욕 양키스·58개)와 오타니(54개)의 2파전이었다면 올해는 3파전 또는 그 이상이다. 롤리 때문이다. 27일 현재 롤리는 MLB 전체 홈런 1위, 타점 공동 2위(85개), 장타율 3위(0.614), OPS(출루율+장타율) 3위(0.983)다. 충격적인 것은 포수 포지션에서 이렇게 가공할 타격을 뽐내고 있다는 것이다. 포수는 워낙 수비 부담이 커 타격은 좀 못해도 투수 리드와 도루 저지 등 포수 본연의 업무만 잘해도 크게 인정받는다. 롤리는 투수 리드, 도루 저지도 정상급인데 홈런쇼로 팀 공격을 이끈다. 도루저지율이 지난해 0.283로 전체 2위, 올해 패스트볼(미트에 맞고 빠진 경우)은 0개다. 타자로는 양 타석을 다 쓴다. 한마디로 ‘사기캐’(사기 캐릭터)인 것. 시애틀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롤리와 6년 1억 500만 달러(약 1433억 원)에 장기 계약했다. 지금 내는 성적과 견줘보면 비싼 계약도 아니다.
오타니와 저지가 2년 연속 벌이는 ‘신들의 전쟁’에 전례 없는 슈퍼메기가 끼어든 형국이다. 37홈런으로 롤리와 오타니를 뒤쫓는 저지가 팔꿈치 염좌로 이날 열흘짜리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얼마간은 롤리와 오타니 둘의 대결이 흥미를 끌게 됐다. 다만 저지는 부상이 크지 않고 복귀하면 우익수에서 지명타자로 옮겨 타격에 집중할 예정이어서 홈런왕 3파전은 더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롤리는 원래 홈런깨나 치던 거포 재질이기는 했다. 2021년 시애틀에서 빅 리그에 데뷔한 그는 2023·2024년 2년 연속 30홈런을 넘겼다. 다만 타율이 2할2푼~2할3푼대라 ‘공갈포’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타격폼을 더 역동적으로 바꾸면서도 중심축 유지를 강화한 올해는 제법 타율을 끌어올려 0.257다. 포수가 MLB 전체 홈런왕에 오른 것은 2021년 살바도르 페레스(캔자스시티 로열스)가 마지막이었다. 당시의 48홈런이 단일 시즌 포수 최다 홈런 기록이다. 남은 경기에서 1주에 하나씩만 쳐도 롤리는 페레스의 기록을 넘는다. 오타니와 저지의 맹추격을 이겨내고 홈런왕에 다다를지 더 관심이다. 롤리는 “40홈런은 정말 뿌듯한 이정표다. 어디까지 갈지 같이 한 번 지켜보자”고 했다.
포수로 나섰을 때 32홈런을 친 롤리를 시애틀 구단은 이날처럼 지명타자로만 쓰기도 하면서 ‘관리’ 중이다. 롤리의 시애틀과 저지의 양키스는 아메리칸리그 가을야구 출전권을 놓고 와일드카드 다툼을 벌일 가능성도 크다.
MLB 전문인 송재우 해설위원은 “스위치 타자들은 좌우 투수에 따라 타격 편차가 있기 마련인데 롤리는 좌우 가리지 않고 홈런을 생산하고 있다. 작년까지는 30홈런을 칠 수 있는 파워 있는 타자 정도였는데 올해 타율을 2할 중반으로 끌어올린 것은 이 선수 입장에서 엄청난 일”이라며 “컨택트가 좋아지면서 홈런도 늘었다. 현재의 스타 파워에 있어서는 오타니, 저지와 비교하기 힘들지만 올해 50홈런 이상도 기대할 만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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