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31일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초청장이 미국, 중국 등 20개 회원국 정상에게 발송됐다. 대외적으로 관세전쟁과 중동·러시아 등의 지정학적 위기로 인한 혼란이 고조되는 가운데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도 새 정부 출범 후 첫 대형 국제 행사라는 점에서 부담이 적지 않다. 지난 2023년 잼버리 사태의 악몽을 극복할 계기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APEC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인 김민석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온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이유다. 이 가운데 숙소를 시작으로 정상회의에 대비한 각종 인프라, 참가 정상들의 면면 등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15일 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이 14일 20개 APEC 회원국 정상에게 오는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대한민국 경주에서 개최될 APEC 정상회의의 초청 서한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김민석 총리는 직접 경주를 찾아 숙소와 문화콘텐츠 준비 현황을 점검했다. 김 총리의 점검은 16일까지 이어진다.
점검 첫째날에는 정상급 및 실무인력, 기자단 숙소와 준비 현황을 점검했다. 김 총리는 식음료 등 서비스 수준이 열악하다는 점을 보고받고 개선을 당부했다. 이어 호텔 종사자들의 서비스 교육 현장도 찾아 "APEC을 기존의 여느 정상회의 이상의 특별한 행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면서 “실무인력들이 성심을 가지고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현재 APEC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대만, 캐나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멕시코 등 21개국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과거 APEC 개최 사례를 보면 주요국 정상이 대부분 정상회의에 참여했다. 다만 러시아의 경우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2022년 이후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대신 대표단이 참석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지난 2023년 3월 전쟁범죄 등에 대한 혐의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ICC 회원국인 우리나라 역시 영장 집행에 협조해야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초청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이러한 의향을 밝힌 데 이어,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지난 1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APEC이 앞으로 약 4개월 뒤인데, 그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5년에도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가 제주에서 열린 APEC 재무장관회의 개막연설에서 "차기 재무장관회의에 북한을 초청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비록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남북 협력의 계기를 만드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북한은 APEC 회원국은 아니지만 비회원국을 초청한 전례는 종종 발견된다.
이번 APEC 정상회의 기간에는 일주일 간 2만여명이 경주 보문단지를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 만큼 가장 중요한 곳은 숙소다. 3000개 객실을 갖춘 경주 내 주요 호텔 12곳은 9월 말까지 리모델링을 완료할 예정이다. 특히 각국 정상급이 묵을 객실인 PRS(Presidential Suite)는 기존 16개가 보수 정비를 완료했고, 여기에 더해 9개가 신설됐다. PRS를 서울 고급 호텔 기준으로 만들도록 경주시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 외교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여기에 부산, 울산, 포항 등지의 5성급 호텔 객실도 미리 확보해 필요할 경우 정상회의 참석자들이 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경주 보문단지와 인근 도시들까지 포함해 행사 기간 외국인들이 머물 수 있는 숙소는 99개 규모다.
포항경주공항은 원래 국내선 공항이지만, APEC 기간 동안에는 우리나라에 입국하는 전용기들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 등에 입국자들이 과도하게 몰리지 않도록 해줄 조치다. 이밖에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24개 협력병원으로 신속하게 이송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됐다.
경주 APEC 정상회의 개최에 따른 경제효과는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효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50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관광단지로 지정된 보문단지에서 순조롭게 행사를 마무리한다면 잼버리 사태로 인한 국민들의 충격도 지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