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졸업만으로는 아무것도 안 돼요. 석사 정도는 있어야 겨우 면접이라도 보죠.”
중국 최고 명문 베이징대를 상위 10% 성적으로 졸업한 크리스털(가명) 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학 재학 중 바이트댄스와 레드노트 등 빅테크 기업에서만 네 차례 인턴을 했고, 베인앤컴퍼니의 케이스 스터디 대회에도 참가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지만, 그는 결국 취업에 실패하고 석사 진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1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에서 석사 학위가 더 이상 ‘전문가 양성 과정’이 아닌, 취업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고용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학위 인플레이션이 심화됐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 상위권 대학의 석사 진학률은 2013년 50% 전후에서 최근 60% 후반까지 상승했다. 낸시 첸 미국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는 “이제는 고액 연봉이 아니라, 독립생활조차 어려운 평범한 일자리도 간신히 얻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한때 “석사 = 고연봉”이라는 공식은 이제 “석사 = 취업 자격증”으로 대체됐다. 실제로 다국적 기업과 대형 민간기업 다수는 신입 채용 기준을 학사에서 석사 이상으로 상향하고 있으며, ‘석사 우대’를 공개적으로 명시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베이징의 한 통신업체 대표는 “과거에는 학부 졸업자도 누구나 취업했지만, 이제는 석사 학위자도 신중하게 걸러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학 석사 과정을 마친 동자천 씨는 “필기시험 준비에 자격증, 인턴까지 갖춰야 겨우 취업할 수 있다”며 “석사는 이제 출발선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졸업 전까지 6곳의 인턴십을 거친 끝에 메이투안(중국판 배달의민족)에 취직했다.
졸업생들의 기대치가 높아진 것도 석사 진학률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중국 온라인 구직 플랫폼 전 CEO 릴리 류는 “요즘 졸업생은 급여 뿐 아니라 근무지, 기업 문화, 가치관, 집과의 거리 등도 따진다”며 “기대에 못 미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모든 석사 학위가 일자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취업 플랫폼 자오핀은 “석사는 단지 입장권일 뿐이며, 최종 경쟁력은 개인 역량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對)중국 관세 정책도 중국 취업시장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류 전 CEO는 “외국계 기업들이 중국 내 채용을 줄이는 추세”라고 밝혔다.
고용 불안은 청년층 전반의 좌절로 이어지고 있다. 첸 교수는 “중국 최고 엘리트까지 타격을 입는 상황은 이례적”이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왜 이렇게까지 공부했나, 그냥 포기할까’라는 회의감이 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취업 시장 냉각이 장기적으로 중국의 인구 구조와 사회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고용 불안이 결혼과 출산 기피로 이어져, 저출산의 악순환을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다.
실제 중국 정부는 지난해 청년실업률이 21.3%까지 치솟자 해당 통계를 일시 중단한 바 있다. 현재는 학생을 제외한 16~24세 기준으로 통계를 재집계 중이지만, 체감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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