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찰의 치안과 법 집행 역량은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2년 전 경찰의날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경찰을 평가한 대목이다. 윤 전 대통령의 말이 맞다. 우리나라 경찰의 치안·수사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많은 국가가 한국의 경찰을 배우려 하고 있다. 경찰청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공적개발원조(ODA)로 총 31건, 800억 원 이상을 투입했을 정도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경찰의 역량을 치하하며 ‘검찰주의자’라는 평가를 지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막상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자 또다시 경찰을 검찰 아래에 두기 시작했다.
내란 혐의를 수사하던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이 윤 전 대통령 측에 수차례 출석을 통보했지만 끝내 소환 조사가 불발됐다. 경찰이 ‘망신 주기’를 한다는 것이 거부 사유였다. 사건을 건네받은 특검팀은 ‘내란의 밤’을 재구성할 수 있는 비화폰 통화 내역 등 스모킹건 관련 수사를 경찰이 진행해왔던 만큼 경찰관들을 파견받았다. 대표 인사였던 박창환 총경이 윤 전 대통령의 첫 조사를 맡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측은 돌연 조사자를 교체해달라며 조사를 거부했다. 특검 조사에는 응하겠다 했던 기존 입장과도 배치된다. 박 총경이 고발을 당한 상태며 윤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의 주체였다는 이유였지만 박 총경을 고발한 주체는 다름 아닌 윤 전 대통령 측이었다. 기저에는 경찰관에게 조사를 받기 싫다는 심리 상태가 깔려 있다고 특검 내부에서 보고 있다.
박 총경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와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에서 버닝썬,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등 굵직한 사건을 도맡아온 경찰 내 대표 수사통이다. 더구나 사법고시를 통과해 변호사 자격증을 보유했는데도 윤 전 대통령 눈에는 그저 아래로 깔보던 경찰인 것이다.
한때 법조계 출신 피의자들이 경찰에 조사를 받는 것을 치욕으로 받아들였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경찰은 발전했고 수사력에 있어서는 검찰과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런 경찰의 조사를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윤석열은 여전히 전 대통령이 아니라 검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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