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와 외래종 유입으로 인해 여름철 한반도가 벌레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러브버그(사랑벌레)’로 불리는 붉은등우단털파리가 급증하면서 불편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각종 퇴치도구 판매와 벌레를 대신 잡아달라는 게시물까지 올라오는 등 전국 곳곳이 아우성이 벌어지고 있다.
2일 당근에 따르면 지역 생활 커뮤니티인 ‘동네생활’ 게시판에 전월 대비 6월 ‘러브버그’ 관련 게시물이 53.4배 폭증했다. 러브버그는 최근 6월 중순 무렵부터 7월 초까지 수도권에서 대규모로 발견된 뒤 사멸되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러브버그 출현이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시에 따르면 러브버그 관련 민원은 처음 대발생이 보고된 2022년 4378건에서 지난해 9296건으로 2년 만에 2배 넘게 증가했다. 지난달 당근 동네생활 ‘러브버그’ 관련 게시물도 지난해 동기보다 올해 약 20% 늘었다. 올해 러브버그 발생 공식 통계는 없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출현 수준이 늘어난다고 유추할 수 있는 셈이다. 러브버그에 대한 혐오감도 상승했다. 서울연구원이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러브버그는 불쾌감을 주는 벌레 중 바퀴벌레(66%)·빈대(60.1%)에 이어 3위(42.6%)에 올랐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서 발생 중인 러브버그 종(種)은 중국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유전자 분석 결과 중국 산둥반도의 칭다오 지역에서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2015년 인천에서 처음 발견된 뒤 2022년 처음으로 수도권에서 대발생하기까지 개체를 축적하는 데 7년이 소요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따뜻한 날씨와 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특성상 기후변화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해충으로 꼽히는 바퀴벌레도 증가하긴 마찬가지다. 당근에 따르면 전월 대비 지난달 동네생활 ‘바퀴벌레’ 게시물은 40% 증가했다. ‘방역’ 키워드도 50% 늘었다. 방역업체 빼애방역 관계자는 “작년 대비 바퀴벌레 방역을 의뢰하는 건수가 50%가량 늘었다”면서 “특히 집바퀴(일본바퀴) 수컷이 많이 관찰되고 있다”고 전했다. 집바퀴는 바퀴벌레 중 저온에 가장 강한 바퀴벌레이기도 하지만, 25도 내외의 환경에서 가장 빠르게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균 기온의 상승이 생존력이 강한 집바퀴의 번식 속도를 높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벌레를 잘 잡는 식충식물을 거래하거나 날벌레가 유입되는 걸 방지하는 에어커튼, 살충제가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러브버그·바퀴벌레 등 곤충이 광범위하게 들끓으면서 “대신 벌레를 잡아주면 사례하겠다”는 게시물도 심심찮게 올라오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와 생태계 변화로 곤충 대발생 현상이 늘어날 것이라며 지자체와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영식 한숲곤충생태연구소장은 “러브버그 같은 돌발해충의 대발생은 검역 관리의 부재와 기후변화, 잘못된 생태 관리 정책에 원인이 있다”면서 “특히 해결방안으로 약재를 한꺼번에 살포할 경우 해충보다 그 천적인 익충이 더 많이 죽게 돼 장기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곤충이 자라나는 여러 공원과 한강을 친환경 생태공간으로 만들어 먹이사슬을 되살려줘야 하고, 지자체에서도 전문가를 초청해 공청회·포럼을 여는 등 적극적인 해결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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