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경제 책사’로 꼽히는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가 29일 “성장은 기업의 혁신에서 나오고 혁신은 정부의 역할에 따라 달라진다”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경제정책 밑그림을 설명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 정부의 역할이 규제보다 기업에 대한 뒷받침에 집중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각의 기업규제와 포퓰리즘이 이 후보의 정책 기조라는 비판을 일축하며 “자본주의 경제 성장의 핵심인 기업 혁신을 정부가 집중 지원할 것”이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하 교수는 이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이 후보가 강조하는 ‘성장과 회복이 기업과 개인의 혁신을 동반하는 성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개인의 혁신도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그 방식의 이상적인 상황을 ‘기본사회’라고 했지만 하 교수는 “정책은 현실과 증거 기반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이 후보의 기본사회 추진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하 교수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소상공인 코로나19 부채…공동체 위해 희생 지원해야
-이 후보의 ‘호텔경제’가 비판받고 있다.
△경제학은 통제된 모델을 통해 복잡한 현실을 설명한다. 총량은 변화가 없어도 돈이 돌면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효과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인데 단순화시켰다고 비판받고 있다. 노쇼가 발생한다면 페널티를 부여하면 되지만 그럴 경우 돈의 순환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이 후보가 해당 발언을 군산시에서 했다는 게 중요하다. 상권이 좋지 않은 지역에 돈이 돌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상황과 장소에 따라 정책의 효과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려는 노력으로 봐야 한다.
-경제상황은 3년 전 보다 더 악화했다.
△윤석열 정부가 건전 재정을 강조했지만 역대급 세수 부족에 재정은 더 허약해졌다. 그 탓에 지출도 못 해 내수는 더 악화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코로나19 당시 대출받은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부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정부의 방역 조치에 협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가 적지 않기 때문에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부분에 대한 지원을 검토할 마지막 기회다.
-채무조정시 도적적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
△채무조정과 함께 일부 탕감도 가능할 것이다. 부채가 본인의 잘못이 아니었잖나. 국가의 방역조치로 부채를 떠안게 됐다면 정부도 모른척 할 수 없다. 공적자금을 포함해 보다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가와 공동체의 고통분담 차원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기업에서 자금 조달을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특례보금자리론에 40조 원을 풀었고, 지난해 신생아특례대출에도 27조 원을 집행했다. 이 자금들이 기업 팔 비틀어서 조달한 게 아니다. 국가가 보증해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인데, 부동산으로 가는 수십조 원의 흐름을 다른 방향으로 틀 수 있다.
-산업 전반이 어렵다.
△발등의 불이다. 인공지능(AI)도 매년 달라지는데 몇 년 동안 인프라조차 제대로 준비가 안 됐다. 투자와 제도 보완, 인력 양성 등 급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바로 대책에 나서야 한다. 이 후보의 AI 100조 원 국민펀드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기업 경쟁력을 높일 방법이 있나.
△내생적 성장이론을 공부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성장은 기업의 혁신에서 나온다. 혁신은 정부의 정책에 좌우된다. 어떻게 서포트를 해주냐에 따라 더 활발해질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다. 혁신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려면 경제·사회 제도적 측면에서도 뒷받침이 돼야 한다는 게 내생적 성장이론이다. 이 후보는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시절 기업친화 정책을 꾸준히 추진했다. 특히 혁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보편적 기회의 혜택이라 할 수 있는데 성남시에 무상교복 같은 제도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책을 하는 분들은 좋은 말만 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 후보는 혁신과 보편적 기회의 부여를 실제로 추진하는 능력과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점에서 이 후보와 경제정책 코드가 맞았고 같은 기조로 자문했다.
-정부의 역할이 결국 규제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과거의 사고와 방식에서 정부의 역할을 규제로 보는 시선이 있다고 본다. 마리아나 마추카토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교수의 주장처럼 정부는 최초의 투자자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 민간의 투자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시키는 구입효과를 통해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키고 사람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할 수 있다. GPS나 인터넷이 미국 국방부에서 시작됐다. 이처럼 정부는 길과 도로를 닦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규제 중에 특히 나쁜 규제가 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입장벽을 쌓고 규제라는 형태로 후발주자가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걷어내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보편적 기회의 혜택이 기본소득인가.
△돈을 1인당 얼마씩 계속 지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중요한 건 국민들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 일할 기회와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다수의 연구 결과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춰질수록 개인의 혁신도 일어난다. 실패하면 끝난다가 아니라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안전망이 있으면 위험을 감수하고 혁신하는 것이다. IMF외환위기 이전까지 사회 안전망은 종신고용으로 기업이 제공했다. 그러다 외환위기를 맞은 뒤에는 각자도생 사회가 됐다. 이때부터 가계부채 기반의 내수 정책이 시작됐다. 쉽게 빚 낼 수 있게 해줄 테니 집을 사든 생계를 해결하든 하라는 유사안전망이 대안이 된 셈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들이 안심하고 혁신에 나설 수 없게 됐다.
-지난 대선과 달리 이 후보는 기본사회를 공약화했다.
△기본사회는 쉽게 이야기해 헌법의 경제적 기본권이 보장되는 이상적인 형태인데, 비전으로서 봐야한다.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방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책이란 건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 방향성을 이야기하면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성장 정책과 맞물려서 성장을 돕고 성장의 과실이 또 순환하는 식의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한 과제다.
-공공임대주택 확대는 주장은 유효한가.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측면으로 이해해야 한다. 공공임대를 선택해 기회를 만들 시간을 부여할 수도 있고, 자산형성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부동산 자산에 관심이 없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 사다리를 올라가고 싶은 사람한테 기회를 만들어 주자는 제언이다.
기재부 개편…민주적 통제 필요
-부동산 세금은 손대지 않나
△징벌적인 세금정책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시장 기능이 잘 될 수 있는 세금 체계가 필요하다. 부동산 투기보다 생산적인 흐름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세수의 균형을 고려하면서 적응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수용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재부 개편이 공약에 들어갔다.
△예산은 기본적으로 민주적인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예산 편성을 기재부 관료들이 하다보니 책임과 권한이 모호한 면이 있다. 권한은 기재부가 가지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식이다. 그러면서 정치적 책임은 집권세력이 진다. 민주적 통제가 필요한 거버넌스를 여러 차원에서 검토해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다면 반드시 성공하길 바라는 정책이 있나.
△대한민국이 저성장 불평등 함정에 이미 들어와버렸다. 지난 대선까지는 전환이라는 화두가 많았는데 이제 전환보다는 회복과 함께 점프를 해야 하는 형편이다. 저성장 사회에선 새로운 생산이 어려워지면 남의 것을 가져오고, 메이킹이 어려우면 테이킹을 하는 비생산적인 장벽 쌓기와 기득권 지키기가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럼 성장은 멈추고 불평등은 심화하면서 함정에 매몰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대도약. 함정을 빠져나와서 도약을 하는 정부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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