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006400)가 현대차·기아의 유럽 전기차(EV)에 적용될 각형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해 헝가리 공장에 대한 대대적인 증설과 개조 작업에 돌입했다. 1조 6500억 원의 유상증자를 성공시킨 삼성SDI는 생산 시설을 확대, 전기차 판매 회복세가 상대적으로 빠른 유럽 시장을 공략해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을 조기에 돌파한다는 구상이다.
26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헝가리 괴드 공장에 대한 증설 작업을 시작했다. 유상증자로 확보한 자금을 통해 헝가리 1공장 개조와 2공장 증설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는데 이의 빠른 이행에 나선 것이다. 삼성SDI는 최근 우리사주조합과 구주주를 대상으로 벌인 유상증자 청약률이 100%를 넘어 1조 6500억 원 규모의 신규 자금이 이달 30일 유입된다. 회사는 확보한 자본금 중 3236억 원을 헝가리 공장에 투입해 생산 시설을 대폭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다.
헝가리 공장은 삼성SDI가 2조 원 이상을 투입해 건설한 유럽 내 핵심 거점이다. 2017년 회사 측은 약 9600억 원을 투자해 브라운관 등을 생산하던 공장을 전기차 배터리 공장으로 전환했다. 이후 1조 원 이상을 추가 지원해 2022년 말 제2공장을 준공했으며 약 40GWh(기가와트시), 준중형차 60만 대에 탑재할 배터리를 생산할 능력을 갖췄다.
삼성SDI는 헝가리 공장에서 각형 배터리를 현재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고 있다. 1공장에서는 양극재와 분리막·음극재 등의 소재를 엮어서 돌돌 말아 캔에 넣는 와인딩 방식, 2공장에서는 소재를 층층이 쌓아서 넣는 스태킹 방식의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신규 공급계약은 에너지밀도가 높은 스태킹 방식의 배터리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삼성SDI는 헝가리 공장을 스태킹 공법이 적용된 각형 배터리 전용 생산 시설로 바꿀 방침이다. 이에 따라 1공장은 스태킹 공법이 적용된 배터리 생산 시설로 개조된다. 나아가 2공장도 생산능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삼성SDI가 유상증자까지 단행하며 헝가리 공장을 증설·개조하는 배경에는 환경 규제 강화로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고 있는 유럽 시장이 있다. 유럽연합(EU)은 올 1월부터 신차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당 93.6g로 규제하고 있다. 배출량 기준을 초과하는 완성차 업체는 1g당 95유로(15만 원)씩 과징금을 내야 한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판매를 늘리고 있고 나아가 보급형 전기차 출시를 앞당기는 등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환경 규제의 영향을 두고 “규제가 캐즘을 눌렀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분기 유럽 시장의 전기차 인도량은 약 89만 8000대(PHEV 포함)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2.8%나 증가했다. 삼성SDI도 유럽 전기차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헝가리 공장 생산능력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것이다.
삼성SDI는 유럽 시장을 발판으로 캐즘 장기화를 뛰어넘을 기회도 잡게 됐다. 삼성SDI는 내년부터 현대차·기아의 유럽형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 공급을 시작한다. 업계에서는 삼성SDI가 2032년까지 약 50만 대 분량의 배터리를 현대차·기아에 공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SDI는 BMW와 폭스바겐 등에 이어 유럽에서 전기차 판매량을 늘리고 있는 현대차·기아까지 고객사로 확보해 매출이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들은 유럽의 탄소 배출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전기차 판매에 힘을 쏟고 있다”며 “유럽의 탄소 배출 규제가 캐즘 극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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