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라 스칼라는 오랫동안 사랑하는 친구 사이였는데, 이제는 가족이 됐네요. 제가 이탈리아와 한국의 오페라 극장에서 예술감독직을 병행하는 것은 이제 시작하는 부산오페라하우스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최근 세계 정상급 오페라 극장인 ‘라 스칼라’의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정명훈이 19일 부산콘서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 감독은 부산콘서트홀과 부산오페라하우스를 총괄하는 클래식부산(부산시 산하)의 예술감독으로서 양 극장의 개관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중 240년 역사 상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라 스칼라의 음악감독으로 선임되는 경사를 맞았다. 부산콘서트홀은 오는 6월 21일 개관을 앞두고 있으며, 부산오페라하우스는 2027년 개관 예정이다.
정 감독은 “1989년 라 스칼라와 첫 연주를 한 이후 지난 36년간 200회가 넘는 공연을 함께했다”며 “라 스칼라 극장의 사장·단원·직원들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이였는데, 공식적으로 예술감독이 되면서 이제는 가족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의 신생 오페라하우스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극장, 두 곳의 예술감독을 동시에 맡게 되면서 양 극장 간 시너지 효과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라 스칼라와의 협력은 신생 극장인 부산오페라하우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앞으로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1778년 개관한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은 베르디의 나부코, 푸치니의 나비부인과 투란도트 같은 걸작들이 초연된 이탈리아 오페라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비이탈리아 출신 음악감독은 다니엘 바렌보임(2007~2014)이 유일했으며, 아시아인으로는 정 감독이 처음이다.
라 스칼라 예술감독으로서의 계획에 대해선 베르디 작품을 중심으로 한 공연 구상을 밝혔다. 그는 “오페라 작곡가 중 음악적으로나 인격적으로 가장 뛰어난 베르디를 가장 좋아한다”며 “라 스칼라에서 베르디 작품을 많이 공연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6년 12월 7일로 예정된 라스칼라 취임 공연 작품으로 베르디의 오텔로를 꼽았고, 2027년 가을로 예정된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작으로도 라 스칼라가 선보이는 오텔로를 구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간담회 내내 그는 이탈리아와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파스타를 처음 맛보고 너무 좋아서 로마에 가 1년 살아보기로 했다”며 “직접 살아보니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은 이탈리아를, 오히려 이탈리아인들보다 더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또 한국의 클래식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는 “전체 아시아가 클래식 음악 수준 올라 왔고, 현재도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한국은 아직 세계적인 오페라 하우스나 오케스트라가 없다는 점에서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부산오페라하우스와 라 스칼라를 모두 열심히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양국 국민이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에 재능이 많은 점이 닮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본래 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며 “한국에 노래를 더 많이 들려주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클래식부산 측은 정 감독의 선임으로 두 극장 간 긍정적인 영향과 상호작용을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박민정 클래식부산 대표는 “공연을 넘어 양국 간 예술가, 작품, 오케스트라, 관객까지 폭넓은 교류가 가능할 것”이라며 “특히 라 스칼라 극장의 운영 노하우 등을 공유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정 감독은 9월 17일과 18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부산콘서트홀에서 라 스칼라 필하모닉 공연이 예정돼 있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오페라 작품을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감상할 수 있는 무대는 부산콘서트홀이다. 6월 27~28일 열리는 부산콘서트홀 개관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는 베토벤의 피델리오를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선보인다. 유럽 무대에서 정 감독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소프라노 흐라추히 바센츠, 테너 에릭 커틀러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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