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소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고령자 근로의 해법으로 법정 정년 연장이 아닌 자율 정년 연장과 ‘고령자 계속고용 의무제’ 도입을 제안했다. 계속고용 의무제는 사업장이 특성에 맞춰 임금·직무 등을 정해 고령자를 더 일하도록 돕는 제도다.
노동계는 그러나 법정 정년 연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계속고용 의무제를 반대하고 있다. 경영계는 고용 유지 부담을 덜 수 있는 임금 체계 개편안이 빠졌다고 우려한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도 법정 정년 연장을 포함한 계속고용 방안을 논의하고 있어 이 문제는 결국 차기 정부가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경사노위 내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는 8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건물에서 브리핑을 열고 계속고용 의무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계속고용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6월 출범한 위원회에는 노동계와 경영계·정부·공익위원이 참여했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안은 노사와 정부가 동의하지 않은 ‘공익위원 단독안’이다. 법적 구속력이 없다. 노사 합의에 실패한 위원회는 공익위원이 그동안 논의를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권고안을 냈다.
공익위원은 고령자 고용 방식을 두 가지로 제시했다. 우선 사업장별로 노사가 합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정년을 늘리는 방식이다. 이 사업장은 계속고용 의무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정년을 늘리지 못한 사업장은 계속고용 의무제가 적용된다. 계속고용 의무제는 세 가지 원칙으로 설계됐다. 정년인 60세 이후 근로를 희망하는 근로자를 모두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또 의무제 적용 근로자는 생산성에 상응하는 적정 임금을 보장받고 근로시간과 직무 선택권도 부여된다.
이 세 가지 원칙을 기초로 노사는 근로자가 희망할 경우 기존 직무와 근로시간을 유지하는 ‘직무유지형’을 도입해야 한다. 다만 고령자의 건강·안전·경영 등 합리적 사유가 있을 경우 직무와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자율선택형’을 쓸 수 있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고령자가 해당 기업의 관계사로 전적하는 특례를 한시적으로 인정한다.
공익위원은 계속고용 의무제가 올해 도입될 경우 2027년까지 2년 유예 기간을 거쳐 2028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도록 설계했다. 2028~2031년은 2년마다 1년씩, 2032년부터는 매년 계속고용 의무가 발생하도록 했다. 이 방식대로면 2033년 계속고용 의무제 연령은 65세가 돼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 일치한다. 이영면 계속고용위 위원장은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60세 이후 고령자 계속고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60세 이후 계속고용에 대한 대비가 미흡하다”며 신속한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하지만 계속고용 의무제가 도입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그동안 계속고용위 내 노사는 계속고용 방안을 두고 접점을 찾지 못했다. 노동계는 국민연금 개시 연령에 맞춘 법정 정년 연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국민연금 수급이 2033년부터 65세로 상향되면서 현행 정년 60세와 5년 소득 공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반면 법정 정년 연장을 반대한 경영계는 임금 체계 개편을 동반한 퇴직 후 선별적 재고용이 필요하다고 맞서왔다. 이 위원장은 “법정 정년과 연급 수급 연령을 일치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면서도 “법정 정년 연장의 제반 여건이 성숙되기 전까지 계속고용 의무제는 과도기적 조치로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경사노위와 별도로 계속고용 방안 논의가 한창이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정년 연장을 사회적 합의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노사가 참여한 계속고용 방안 협의체를 가동하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기업에 정년 자율권을 주는 방식의 계속고용 공약을 내놓았다.
노사는 이날 경사노위 방안에 모두 반박 성명을 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공익위원이 노사를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안”이라며 “계속고용 의무제는 연령 차별, 소득 공백, 노사 갈등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에 따라 일률적인 고용 의무로 인한 생산성 저하가 일어날 것”이라며 “일본처럼 노사가 재고용 대상자를 합의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종명 대한상공회의소 산업혁신본부장도 “(공익위원안은) 사실상 정년 연장안으로서 기업 경직성 심화, 청년 세대 일자리 충돌 문제를 만들 것”이라며 “고령자 고용 연장은 임금 체계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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