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제정치학자이자 ‘소프트파워’ 개념을 정립한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8세.
하버드대는 7일 성명을 통해 이 같은 소식을 전하고, 고인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거인”이라고 평가했다.
나이 교수는 60년이 넘는 학술 및 공직 생활 동안 국제관계 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박사학위 취득 후 1964년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됐으며 미국을 비롯한 각국 지도급 인사들이 다수 수학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을 지냈다. 지미 카터·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요직을 지낸 정부에서의 실무 경험을 자신의 연구에 접목하기도 했다. 카터 행정부에서 핵 비확산 노력을 주도한 뒤 케네디스쿨 소속 벨퍼센터 소장으로 재직하던 1989~1993년 이 주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를 이어갔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엔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로 임명돼 아시아와 미국의 안보 관계 전략을 개발하는 업무를 주로 주도했다. 특히 중국의 아시아 지역 내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미일동맹을 강력하게 지지하며 지난 4월 타계한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과 함께 2000년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를 발표, 21세기 미일동맹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을 제안했으며 이후 일본의 정책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국제정치에서 군사력과 같은 ‘하드파워’와 구별되는 ‘소프트파워’ 개념을 선보이기도 했다. 소프트파워는 강제나 금전적 대가가 아닌 ‘매력’을 통해 원하는 바를 얻는 국가의 능력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나이 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에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소프트파워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쓴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그는 “진정한 현실주의는 자유주의적 가치나 소프트파워를 무시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트럼프와 같은 극단적 나르시시스트는 진정한 현실주의자가 아니며,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앞으로 4년 동안 어려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이 교수의 별세 소식에 미국 정치권에서도 애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조 바이든 행정부 국무장관을 지낸 앤서니 블링컨은 “세계와 그 안에서의 미국의 위치에 대한 이해에 조지프 나이만큼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도 “그의 위대한 점은 고도의 이론적 국제관계 사고를 할 수 있으면서도 이를 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완벽한 학자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FT는 나이 교수와 아미티지의 잇따른 타계가 인도-태평양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고, 미국의 아시아 전문가 풀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와일더 전 보좌관은 FT에 “우리는 분명히 아시아 문화에 정통한 사람들의 부족을 경험하고 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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