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에는 실제 잔디로 이뤄진 쇼트 게임장을 조성할 겁니다. 1층에는 스크린골프, 2층엔 스크린(디지털) 연습 타석을 넣을 거고요. 그리고 3층엔 골퍼들에게 일종의 놀이터인 복합 문화공간을 만들려고 해요.”
국내 1호 골프전문 아나운서로 이름을 날렸던 유협 한국 10대 골프장 선정위원(이하 위원)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최근 추진하고 있는 골프 복합 단지에 대한 얘기부터 꺼냈다. 사실 몇 년 전 큰 수술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던 터라 내심 건강을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한참 지났지만 유 위원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에는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2011년 방송사 그만둔 후에도 골프장 대표에 대학 교수, 검찰 형사조정위원회 간사, 그리고 골프 아카데미 운영 등을 하느라 한 번도 쉬지 못했어요. 돌이켜보면 병이 날 만도 했지요. 근데 가만히 있다 보니 갑갑하지 않겠어요. 쉴 팔자는 못 되나 봐요. 하하.”
유 위원은 투자자가 경기 고양에 이미 약 4000평 부지를 확보해 놨고, 그곳에 들어설 골프 단지에 대한 컨설팅과 운영 총괄을 자신이 맡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무인 시스템을 도입해서 젊은 친구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특히 3층은 커피나 맥주를 마시면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꾸밀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나운서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뒤 골프를 즐기면서 건강을 회복한 유 위원에게는 인생 3막의 시작인 셈이다. 구상 중인 골프 문화공간을 더욱 풍성하게 꾸미기 위해 한국 10대 골프장 선정위원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를 살려 강의할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복합 공간 얘기를 듣는 순간 ‘이건 재밌겠다.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골프 중계가 다른 스포츠 중계와 다른 점이 뭔 줄 아시나요? 너무 말을 많이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필드에서처럼 동반자가 샷을 하려고 하면 말을 멈춰야 해요. 일종의 ‘쉼의 미학’이죠. 골퍼들에게도 그런 쉼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저도 그곳에서 친구들 만나면서 취미도 좀 즐기고요.”
유 위원이 골프 중계석에서 마이크를 잡은 건 1991년부터다. MBC에서 주로 야구 중계를 하다 SBS로 옮기면서 윤세영 창업회장의 눈에 띄어 당시 새롭게 시작한 ‘금요골프’ 프로그램의 MC로 발탁됐다.
“윤세영 회장님이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골프를 대중화시켜 우리도 세계적인 선수를 키워내자고 하시더군요. 제가 그 뜻에 부응하려고 애썼고, ‘금요골프’가 좋은 본보기가 됐지요. 골프 중계를 맡게 된 건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습니다.”
유 위원은 골프 덕분에 “개안(開眼·깨달음을 얻다)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세상을 본 것이다. 그는 마스터스, US 오픈, 디 오픈, PGA 챔피언십까지 4대 메이저 대회 현장을 모두 다녀오기도 했다. ‘골프 중계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셈이다. 방송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감동의 순간은 1998년 박세리의 US 오픈 우승이었다고 되돌아봤다. “원래 아나운서는 침착해야 하는데 그땐 방송 중에 눈물을 흘렸어요. 역사적인 우승과 더불어 이후엔 저도 국내 골프 대중화에 작은 기여를 했다는 것에 나름의 보람을 느끼지요.”
유 위원은 2007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금강산 아난티 NH농협 오픈 때 다녀온 금강산 골프장을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금강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앞에는 동해 장전항이 펼쳐져 있는데 어찌나 웅장하고 기가 막히던지요. 지금은 폐허가 됐다고 하는데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어요. 당시 북한 노동당 간부가 ‘아니, 그 조그만 구멍에 어째 그렇게 집어넣으려고 애쓰십네까’라고 했던 말도 기억이 나네요.”
유 위원은 평생 ‘말의 힘’으로 먹고 살았다. 그런 그가 메모해 두고 자주 되뇌던 문구가 있다. 2000년대에 골프스타 커티스 스트레인지가 모델로 나온 골프의류 광고 속 독백 내레이션이다. “승리했을 때도 저는 필드에 있었고 패배했을 때, 그때도 저는 필드에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삶을 필드에서 시작했고 필드에서 완성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전 골퍼니까요.”
일흔 살 유협은 ‘천생 골퍼, 영원한 골퍼’다.
[18문 18답]
-구력은?
1985년 입문(40년)
-평균타수
핸디캡 7 유지하다, 4년 전 수술 후부터 두 배인 14로 껑충 뜀
-월 평균 라운드 횟수
4~5회
-보유 골프 회원권은?
없음
-평소 코스 평가할 때 우선으로 삼는 기준은?
잔디 관리가 얼마나 잘 돼 있는가? 코스 설계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가? 정리정돈 상태와 종업원의 서비스 마인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국내골프장은?
곤지암, 마이다스밸리 청평
-가장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골프장은?
세이지우드CC 여수경도
-나의 베스트 파3홀은?
파인비치 6번과 일동레이크 18번 홀(칠 때마다 그 결과에 가슴 설렌다)
-나의 베스트 파4 홀은?
휘슬링락 코쿤 코스 4번 홀(352야드로 길지 않지만 해저드와 바위, 벙커가 뒷산을 배경으로 그린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정확한 세컨드 샷 공략이 요구된다), 힐드로사이 파인 코스 3번 홀(도전 의식을 불러오는 402야드 길이의 매력적인 홀)
-나의 베스트 파5홀은?
클럽 나인브릿지 하이랜드 9번 홀(2온과 3온을 선택해 공략할 수 있는 홀)
-외국에 소개할 만한 한국 골프장만의 자랑은?
1) 캐디들의 서브 능력 2) 좁은 국토임에도 산악 및 비치 코스와 아름다운 조경을 경험할 수 있음 3) 라운드 후 목욕시설에서 몸을 담그며 피로를 풀 수 있다는 점(일본처럼)
-한국의 골프문화 중 이어져야 할 것과 없어져야 할 것은?
좋은 스윙 습득을 위해 특히 젊은 골퍼들이 스스로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는 점에서 밝은 미래가 기대됨. 수출될 만큼 과학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잔디 관리 방법. 지나친 내기 문화, 규칙 준수 노력 부족, 비싼 그린피, 골프 의상 사치 경쟁은 개선돼야 함
-우리나라 골퍼들이 꼭 갖추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매너와 애티켓은?
룰 숙지, 라운드 중 과도한 음주와 흡연, 빈번한 전화 통화
-가장 이상적인 동반자는 어떤 동반자라고 생각하나?
내가 배려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동반자, 스코어에 무덤덤하며 골프 자체를 즐길 줄 아는 동반자
-가장 좋아하는 골프 선수는?
베른하르트 랑거
-좋아하는 골프 금언이나 좌우명은?
큰 지혜는 조용하고 품위가 있지만, 작은 지혜는 기분에 널뛰기를 한다
진짜 골퍼란 정신적으로 진지한 사람을 말하며 볼을 치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골프 입문 계기는?
깊이 있는 방송을 하기 위해
-나에게 골프란?
인생 그 자체이자 건강을 위한 비타민이다(지나친 골프 사랑으로 건강을 잠시 잃었고, 골프 덕분에 건강을 다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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