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출신인 제가 회암사 주지로 부임하면서 스님들의 평균 세랍(세속 나이)이 20대로 낮아졌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젊은 사찰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년 고찰 회암사가 젊어진 것처럼 이번 기회에 한국 불교도 젊은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으면 합니다.”
5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경기 양주시 회암사에서 만난 인공(印空) 주지 스님은 “한국 불교는 출가자와 신도 감소라는 위기에 처해 있다”며 “그 해법으로 스님과 재가자 모두 젊은 층 유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인 회암사는 고려 말 창건돼 조선 초 흥성했던 최대의 왕실 사찰이다. 한국 불교에서 중요 사찰이자 조계종의 수행 근간을 이뤘던 천년 고찰인 회암사는 16세기에 원인 모를 화재로 소실됐다가 20세기 들어 중건됐다. 202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됐다.
인공 스님은 1998년 일곱 살의 나이로 티베트 불교 최대 종파이자 달라이 라마가 속한 겔룩파 소속으로 출가했다. 당시 티베트를 찾은 범하 스님과의 인연을 계기로 한국행을 결심했고 2010년 조계종 승려로 재출가했다. 올해로 한국에 온 지 16년 차인 스님은 3월 종교인으로는 이례적으로 특별 귀화 자격을 얻어 정식으로 한국인이 됐다. 인도에서는 한국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스님은 “회암사를 창건한 나옹선사의 사제인 지공선사도 인도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한국행부터 회암사 주지 소임까지 모든 게 연(緣)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조계종이 암자나 작은 말사가 아닌 대표 공찰인 회암사 주지로 인도 출신인 인공 스님을 임명한 것은 젊은 불교, 새로운 불교, 불교 세계화를 상징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회암사는 지난해 9월 인공 스님 부임 이후 대학생부터 20~30대 직장인 비율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사찰에 상주하는 스님들이 젊어진 것도 영향을 끼쳤다. 현재 회암사에 상주하는 6명의 스님 가운데 인공 스님을 제외하고 모두 세랍 20대인, 말 그대로 젊은 스님들이다. “회암사 신도들 상당수는 수십 년간 인연을 이어오신 분들이 많아 고령층인데 손자와 자식 같은 스님들을 보고 즐거워하신다”며 “문을 걸어 잠그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신도들과의 만남·소통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인공 스님은 외국인 스님들의 출가를 지원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지금까지 인도·스리랑카 등 5명의 외국인 스님이 회암사를 통해 출가했다. 인공 스님은 “회암사에 머무는 동안 1순위 목표는 인도 스님들을 한국에서 불법(佛法)을 전하도록 키워내는 것”이라며 “회암사를 외국인 스님 출가 도량으로 키워내겠다”고 전했다. 스님은 외국인 유학생들과 연계한 다양한 활동으로 한국 불교를 널리 알리는 데도 노력하고 있다. 스님은 “포교 목적보다는 외국인 유학생들과의 인연이 한국 불교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인공 스님이 회암사 주지로 부임한 뒤 처음으로 맞는 행사다. 특히 일제강점기 국외로 반출된 나옹·지공선사 등의 사리 5구가 지난해 미국 보스턴미술관의 기증으로 100년 만에 회암사로 반환돼 불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인공 스님은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국민 피로감이 큰 만큼 별도의 법어 대신 무료 체험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며 “불자가 아니어도 좋으니 천년 고찰 회암사에 들러 사리도 관람하고 휴식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