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일극 체제’ 논란 속에서도 27일 대선 후보로 선출됐지만 그를 대표하는 또 다른 수식어는 ‘비주류’였다. 소년 노동자 출신 ‘무(無)수저’가 2022년에 이어 민주당의 대선 후보 자리를 연거푸 꿰차기까지 그의 성장 과정과 정치 이력은 순탄치 않았다.
이 후보는 1964년 경북 안동의 화천민 집안에서 5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이 후보는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일하다 왼쪽 팔뚝을 찍혀 장애 등급 판정을 받고 군 면제를 받았다. 그는 공장 일을 병행하며 검정고시를 치르고 중앙대 법대에 합격했다. 그의 사법연수원 성적은 상위 30% 안팎으로 꽤 좋았지만 출세가 보장된 판검사 대신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당시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연에 영향을 받았다. 이 후보는 1989년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에서 활동했다. 이때 숙명여대 음대 졸업생이던 아내 김혜경 씨를 만나 1991년 결혼한다.
정치권에 첫발을 내디딘 건 2006년 성남시장 선거였지만 낙선했다. 2010년 재도전 끝에 성남시장에 당선된 그는 정치인으로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3대 무상복지 정책(청년 배당·무상산후조리지원·무상교복)을 발표해 포퓰리즘 논란 속에서도 전국적 관심을 불러 모았다. 2016년 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는 두터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지지층을 기반으로 대통령 퇴진을 가장 먼저 주장하면서 속이 시원하다는 뜻의 ‘사이다’라는 별명을 얻었다.
19대 대선 경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경쟁했지만 득표율 3위로 탈락했다. 이듬해 2018년에는 지방선거에 출마해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친형 강제 입원 의혹’ 등과 관련해 당선 무효형을 받았으나 대법원의 무죄 확정판결로 기사회생했다. 이후 줄곧 민주당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며 2021년 민주당의 20대 대통령 후보가 됐지만 2022년 본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0.73%포인트 차로 석패했다.
이 후보는 대선 패배 뒤 5개월여 만에 거대 야당의 지휘봉을 잡으며 당 대표 임기를 시작했다. 지난해 1월 부산 가덕도신공항 부지를 찾았다 피습 당해 죽을 고비를 넘기도 했다. 3개월 뒤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친명횡재 비명횡사(친이재명계는 살고 비이재명계는 탈락)’ 공천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총선 압승으로 당내 장악력을 한층 강화했다. 지난해 8월 85%가 넘는 득표율로 당 대표 연임에 성공해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유지하며 민주당의 21대 대통령 후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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