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아버지’로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던 프란치스코(88) 교황이 부활절 다음 날인 21일 선종했다. 2013년 사상 첫 남미 출신으로 교황에 선출돼 즉위한 지 12년 만이다.
21일(현지 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패럴 추기경은 이날 바티칸 TV 채널에서 “오늘 아침 7시 35분, 로마의 주교 프란치스코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며 “그의 전 생애는 주님과 그분의 교회를 위한 봉사에 바쳐졌다”며 교황의 선종을 알렸다.
교황은 기관지염으로 지난 2월 14일부터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이후 추가로 폐렴을 진단받는 등 건강 상태가 급속히 나빠졌고 역대 최장 기간인 38일 간 입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 이후 산소 마스크를 쓰고 휠체어에 앉아 공개 일정을 수행했지만 끝내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패럴 추기경은 “그는 복음의 가치를 충실함과 용기, 그리고 보편적 사랑으로 살아가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쳤으며,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사랑을 보여줬다”고 추모했다. 이어 “주 예수의 참된 제자로서 보여주신 그분의 모범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며 “교황 프란치스코의 영혼을 하느님의 무한하고 자비로운 사랑에 맡긴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요셉 신학교에서 공부해 사제서품을 받고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됐다. 베네딕토 16세가 2013년 건강상의 이유로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나자 같은 해 266대 교황에 선출됐다. 프란치스코는 첫 아메리카대륙 출신 교황이자 첫 예수회 출신 교황,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사용한 최초의 교황이었다.
교황은 진보적인 행보로도 눈길을 끌었다. 가톨릭 교회의 핵심 교리와 전통적인 가르침을 큰 틀에서 유지하면서도 동성애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나 세례 거부 등을 비판하며 포용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여성을 처음으로 교황청 장관에 임명하기도 했다. 교황은 폐렴으로 입원했던 병상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3주년을 맞아 “전쟁은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고 이스라엘에는 “어린이들을 해치는 것은 잔학 행위”라며 평화를 강조했다. 최근에는 미국 주교들에게 서한을 보내 “대규모 추방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대한 위기를 면밀히 주시해왔다”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2014년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등 한반도 평화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방문 당시 세월호 참사 추모를 두고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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