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가시라도 손가락 끝에 박히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손은 그만큼 예민하다. 골프채와 우리 몸을 연결해 주는 유일한 고리가 손이다. 그립은 그만큼 중요하다.
이번 호기심 해결소의 주제는 그립과 구질의 상관관계다. 그립의 두께와 무게가 볼의 방향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물론 관련 이론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실제 볼이 예상대로 날아갈지 궁금했다.
이론부터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그립이 얇아 손잡이 부분이 가늘수록 골퍼의 손목 사용은 좀 더 자유로워진다. 릴리스 동작이 활발해지면서 스윙을 당겨 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그립이 두꺼우면 버겁게 느끼면서 손목 사용이 불편해진다. 이 영향으로 임팩트 순간 페이스가 열려 맞으면서 볼이 밀릴 확률이 높다.
이론이 대부분 들어맞지만 현실에서는 간혹 왜곡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피팅 전문가들에 따르면 20% 정도는 이론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현실은 어떨지 오랜 기간 피팅 노하우를 축적해온 핑골프의 도움을 받아 테스트를 진행했다. 핑의 올해 신제품인 G440 맥스 드라이버를 이용해 핑의 직원이 때려 보기로 했다.
우선 드라이버 로프트 각도(9도)와 길이(46인치) 등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립만 바꿔가면서 5회씩 샷을 했다. 테스트 참가자가 평소 사용하는 중간 굵기의 아쿠아 그립을 장착하고 때린 뒤 가장 얇고 가벼운 블루 그립, 그리고 가장 무겁고 두꺼운 오렌지 그립으로 교체해 시타했다.
이론과 다른 결과…얇은 그립 ‘우측’, 두꺼운 그립 ‘좌측’
먼저 아쿠아(중간 굵기) 그립을 장착한 드라이버로 때렸을 때 실험 참가자의 샷은 살짝 좌측으로 향했다. 다음에는 얇고 가벼운 블루 그립으로 교체를 했다. 그랬더니 드라이버 스윙 웨이트가 D5.5로 올라갔다. 아쿠아 그립일 때 스윙 웨이트(D4)보다 1.5포인트가 증가한 것이다.
스윙 웨이트는 클럽의 그립과 헤드 쪽의 중량 비율을 말하는 것으로 클럽 전체 무게(토털 웨이트)와는 다른 개념이다. 쉽게 말하면 골퍼가 느끼는 헤드의 무게감을 뜻한다. 스윙 웨이트는 A, B, C, D, E 다섯 단계로 구분하고, 각 구간은 다시 10단계로 나뉜다. A에서 E 쪽으로 갈수록, 1에서 10 쪽으로 갈수록 헤드 무게감이 크다. 가벼운 블루 그립으로 교체한 뒤 스윙 웨이트가 D4에서 D5.5로 높아진 건 그립 쪽 무게가 줄면서 상대적으로 헤드 무게감이 늘어난 것이다.
볼의 구질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얇은 블루 그립 드라이버로 때리자 이론과 달리 볼의 탄착군은 우측에 형성됐다. 가장 두꺼운 오렌지 그립으로 교체하자 스윙 웨이트는 D1로 감소했고 샷의 탄착군은 좌측으로 크게 이동했다. 역시 이론과 정반대 결과였다.
이번에는 그립을 교체하지만 무게 밸런스 조정을 통해 스윙 웨이트를 D4로 고정해 보기로 했다. 얇은 블루 그립 드라이버로 때리자 볼의 낙하지점은 우측으로 좀 더 이동했다. 두꺼운 오렌지 그립 드라이버의 낙하지점은 역시 좌측이었지만 그 정도가 크지 않았다. 어쨌든 이번에도 이론과 실제 결과는 달랐다.
왜곡 현상이 발생한 원인은 ‘보상 작용’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걸까. 실험 참가자는 “얇은 그립 드라이버로 칠 때 다운스윙에서 약간 타이밍이 빨라지는 게 느껴지고 당겨 칠 것만 같았다”고 했다. 이어 “두꺼운 그립 드라이버는 확실히 어드레스 때부터 버거운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고 했다.
핑골프의 피팅 담당 김의진 대리는 “평소 피팅을 할 때는 대부분 이론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번 실험에서는 아무래도 ‘보상 작용’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예를 들어 두꺼운 그립으로 바꿨을 때 우측으로 밀릴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미세하게 손목이나 손가락 개입이 더 많아져 샷이 밀리는 정도를 상쇄하거나 압도해 오히려 왼쪽으로 당겨지는 구질이 나왔다는 것이다.
핑 테크팀의 우원희 팀장은 “피팅을 해보면 이론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며 “이런 이유 때문에 스윙과 데이터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골퍼에 대한 심층적인 상담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번 그립과 관련한 호기심 해결소 실험에서 우리는 이론과 다른 결과를 얻었다. 한 명의 데이터로 이론이 잘못됐다고 얘기할 순 없다. 나름의 의미를 찾는다면 간혹 왜곡 현상이 발생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진료는 의사에게, 피팅은 전문 피터에게!”
내게 꼭 맞는 그립, 어떻게 찾을까
핑은 그립 차트를 통해 골퍼에게 가장 알맞은 그립을 추천해 준다. 핑은 현재 블루, 레드, 아쿠아, 화이트, 골드, 오렌지까지 총 6종의 그립을 제공하고 있다. 차트의 맨 아래에 있는 블루 그립이 가장 얇으면서 가볍고,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크기와 무게가 증가한다. 핑 제품 중에서는 맨 위쪽에 있는 오렌지 그립이 가장 두껍고 무겁다.
손 측정은 오른손잡이일 경우 왼손을, 왼손잡이일 경우 오른손을 잰다. 그립과 좀 더 접촉 면적이 넓은 손을 재는 것이다. 먼저 전체 손의 크기를 측정한다. 손목 주름부터 가장 긴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잰다. 그 다음엔 가장 긴 손가락(중지) 길이를 잰다.
그립 차트의 X축(가로)은 손가락 길이, Y축(세로)은 전체 손의 길이를 나타낸다. 손가락 길이와 전체 손 길이가 만나는 지점의 컬러가 골퍼에게 맞는 그립이다. 예를 들어 가장 긴 손가락 길이는 9cm, 전체 손 길이는 20cm인 골퍼에게는 화이트 그립이 맞다. 가장 긴 손가락 길이는 9cm로 동일하지만, 전체 손 길이가 21cm라면 골드 그립을 추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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