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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다시보기] 달리는 열차의 시간여행자들

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





리들리 스콧은 자신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영감을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 장 레옹 제롬(1824~1904)의 ‘폴리케 베르소(police verso)’에서 얻었다고 했다. 제롬은 일찍이 그의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아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고, 스물세 살 되던 해에 살롱전에 입상했다. 화가로서 그의 인생은 성공 자체였다. 일찍이 에콜 데 보자르의 교수가 됐고 1867년에는 프랑스 최고 명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제롬이 전성기를 구가할 즈음은 그의 고전적 사실주의의 빛을 결정적으로 바래게 만들 변화가 본격화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가 최초로 살롱에 출품했던 때 이미 사진기가 등장했고 그것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정교한 사실 묘사의 가치에 균열이 가게 만들었다. 이제 곧 ‘인상주의자’라는 명칭을 갖게 될 이단아들이 등장할 것이었다. 덜 자라고 어설퍼 보이는 급진적 화풍에 대한 제롬의 반응은 반발심을 넘어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그에게 인상주의자들은 그야말로 ‘웃기는 녀석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새로운 화풍으로 내세우는 것은 고작 살롱 화가들에 대한 질투와 낙선을 합리화하려는 ‘엉터리 수작’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역사로부터 결이 다른 계시를 듣는다. 역사와 상황에 대해 긴 호흡과 열린 태도를 취하라는 것이다. 제롬의 오류는 자신과 자신의 시대를 과대평가했다는 것에 있다. 역사는 달리는 열차와도 같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열차에 잠시 승차했다 곧 내려야 하는 길지 않은 구간의 승객이다. 시간 여행자인 승객들로선 열차의 방향이 잘못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 늘 그렇기는 하다-,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종종 열차에서 뛰어내림으로써 그 방향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로 다음 역이 어디인지, 종착역은 또 어디인지에 대해 열차 안의 시간 여행자들로서는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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