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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정부'로 가는 길[Pick코노미]

[KO'RE'A 미러클]

◆서경 3대 제언

AI 혁명 낙오되면 돌파구 없어

'최소 100조 특별기금'은 필수

정부조직 재편·생태계 구축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 뒤 열린 첫 국무회의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원로와 청년들은 “이대로는 국가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가난을 딛고 일어선 70대 원로부터 배고픔을 경험하지 않은 20대 청년들까지 입을 모아 ‘불안한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의 성장 엔진이 이대로 멈출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막연한 공포가 아니다. 1%대로 낮아진 잠재성장률, 추월당하는 기술 경쟁력, 가장 빠른 고령화와 저출생 등이 뚜렷한 위기의 징조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인공지능(AI)이 가져올 빅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AI 혁명은 과거 우리가 추격했던 산업화·민주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지금 선도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 격차를 좁힐 수 없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에서는 출발 총성이 울린 지 오래다. 심지어 미국·중국은 이미 글로벌 AI 생태계를 양분하고 있다.

아직 추격의 시간은 있다. 정부부터 바뀌면 된다. 정책의 모든 우선순위를 AI에 둘 정도의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좌우를 떠나 차기 정부는 당장 세 가지 과제부터 풀어야 한다.

먼저 최소 100조 원 규모의 ‘AI 특별기금’ 조성이다. AI 패권 경쟁은 국가 총력전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AI 칩과 데이터센터, 이것을 가동할 전력망 구축을 위해 100조 원 이상의 실탄이 필요하다. 올해 365조 원에 이르는 의무지출부터 구조조정할 수 있는 결기가 필요하다.

정부 조직의 재구조화도 절실하다. 대통령실부터 섬마을 읍사무소까지 AI 과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AI 부총리를 둬 정책 전반을 컨트롤하게 해야 한다. 중앙 부처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에 ‘최고AI책임자(CAIO)’를 둬야 한다. 그래야 부처별 밥그릇 싸움을 막고 예산이 현장에서 빠르게 집행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AI 생태계 구축이다. 정부가 일감을 줘 초기 AI 기업의 생존율을 높이고 건강보험 데이터 등 ‘메가 데이터’를 개방해야 한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8일 “정부가 AI 인프라를 확충하고 빅데이터 규제는 풀어 기업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77년 묵은 정부조직, 데이터 중심 대수술…'AI 부총리' 도입을




발트해 연안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에서는 출생신고를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다. 산모가 출산 직후 병원 침대에서 출생신고를 하면 몇 분 안에 의료보험 혜택과 육아 지원금 안내가 자동으로 도착한다. 우리나라처럼 남편이 직접 주민센터를 방문할 필요도, 복지 기관을 찾아갈 이유도 없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운영하는 전 국민 데이터 연계 플랫폼 ‘X로드’에 인공지능(AI) 기반 복지 행정 서비스가 실시간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필요한 공공서비스는 AI가 데이터 분석과 예측을 통해 사전에 제공하고 정부의 정책 설계에도 반영된다. 행정과 민원 상담은 AI 관료인 ‘뷰로크라트’가 수행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AI 기반의 행정 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모든 부처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AI가 행정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갖춘 에스토니아와 달리 우리나라는 1948년 제정된 정부조직법 틀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를 보유하고도 빅데이터 활용 능력은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는 이유다. 실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2023년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빅데이터 사용 및 활용 능력 수준은 평가 대상 63개 국가 중 31위에 머물렀다.

현행 정부조직법은 각 부처를 기능 중심의 위계적 구조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경직된 구조는 부처 간 칸막이 현상을 심화시키고 협업을 어렵게 만든다. AI와 데이터 기반의 정책 설계를 위한 유연 조직 개념 자체가 없다. 디지털 태스크포스(TF)나 실험 조직을 만들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 조직일 뿐이다. 현 정부조직법 체계에서는 데이터가 부처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고여 있게 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AI가 정책 주체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부조직법은 행정부의 정책을 사람만이 설계하고 판단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AI가 데이터를 아무리 잘 분석·예측하고 정책을 설계하더라도 그 판단은 공식적으로 채택될 수 없다. AI가 보조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韓은 빅데이터 활용 낙제점…경직된 문화로 '부처 칸막이' 심화




전문가들은 정부조직법을 AI 중심으로 과감하게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먼저 법안에 ‘유연 조직’ 개념을 반영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기능 중심의 조직에서 벗어나 특정 정책 과제를 중심으로 여러 부처와 민간 전문가가 협업할 수 있는 프로젝트형 조직을 상설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 조직에서는 AI가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닌 정책의 공동 파트너 역할을 하게 된다.

법을 개정해 AI 기반 정책 설계를 총괄 조정하는 전담 기구를 설치하는 방법도 있다. 정부 AI 업무 전반을 통할하는 전담 부총리를 두는 동시에 AI혁신처를 신설해 각 부처 간 데이터 흐름을 조정하고 디지털 자원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조직은 AI 기반의 행정 혁신뿐 아니라 법·제도 개편 역시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실제 싱가포르는 국가 주도로 디지털 전담 조직을 정부 조직 내에 두고 기존 부처 간 경계를 허무는 유연한 구조를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전략 수립은 국무총리실 산하 스마트네이션오피스(SNO)가 맡고 실행은 부처별로 민간 전문가 중심의 기술직인 ‘정부기술청(GTC)’이 수행한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8일 “AI 정부로 전환하려면 단순히 조직만 바꿀 것이 아니라 싱가포르처럼 민간과의 경계가 유연한 개방형 구조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수직적인 인력 구조도 수평적으로 재편돼야 한다는 지적 또한 나온다. AI 시대에는 고위직 관료의 행정 경험이나 노하우보다 AI를 활용해 양질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책 설계에 도움이 되는 답을 도출해내는 역량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기존의 군단형 정부 조직이 게릴라형 또는 1인 유닛 기반 조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는 “AI 정부의 조직은 기존의 장관·실장·국장·과장·사무관으로 이어지는 위계적인 구조가 수평적으로 바뀌고, 하위직도 상위직 못지않은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칩 확보서 데이터센터까지…전 산업에 'AI 고속도로' 깔아야




광주 북구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국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1동(棟) 자리잡고 있다. 이 데이터센터에서 활용하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숫자는 총 880장. 서버 한 대당 8장의 H100을 꽂아 총 110대의 서버를 운용하는 구조다. 미국 빅테크인 메타가 연내 GPU 130만 개를 확보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감안하면 비교가 민망한 수준이다.

이 데이터센터 설계 과정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8일 “현재 1장당 5500만 원 선인 H100을 싼값에 다수 선점할 수 있어 투자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면서 “건립 과정에서 정부 반대로 일부 AI 가속기만 H100으로 구성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국가의 AI 경쟁력을 좌우하는 고성능 GPU를 다수 비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정부의 정책적 판단 미스로 놓쳤다는 얘기다. 현재 국내 H100 보유량은 민관을 통틀어 2000여 장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연말까지 1만 장 이상의 고성능 GPU를 추가 확보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 제품을 입도선매해 물량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AI 정부의 최대 핵심은 민간기업들이 직접 깔기 어려운 AI 인프라를 정부가 나서 구축해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시총 3900조 원(마이크로소프트) 기업의 투자 물량 공세에 국내 민간기업들이 맞서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HAI)에서 발간한 ‘AI 인덱스 2025’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민간투자는 2022년 31억 달러에서 2024년 13억 3000만 달러로 도리어 뒷걸음쳤다. 이 기간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의 실적이 위축된 영향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메타 등이 자본 지출의 대부분(2024년 4분기 44~77%)을 AI 데이터센터 구축 등 인프라 확충을 위해 사용하는 데 반해 네이버·카카오·쿠팡 등 국내 빅테크 기업은 3~6%에 그친다.

“100조 재원 합작기금 형태 마련…'민관 공동 데이터센터' 구축을”




국가AI위원회는 2024~2027년 4년간 민간의 AI 투자가 총 65조 원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이 중 88%가 메모리와 같은 AI 반도체에 쏠려 있다. AI 칩을 사들이거나 데이터센터에 투자할 여력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민간의 인프라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부의 마중물 투자가 절실한 이유다.

실제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는 GPU와 데이터센터를 산업화 시절 서울과 부산을 연결한 경부고속도로 같은 핵심 사회간접자본(SOC)으로 인식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에 들어간 건설비 429억 7300만 원은 건설 구상이 처음 나온 1967년 국가 예산의 23.6%에 해당했다. 단순 대입하면 AI 인프라에 올해 국가 예산의 23.6%를 쏟아부을 경우 1000억 원 규모의 국가AI데이터센터를 전국에 1590개나 더 세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AI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 국가 재정 건전성도 지켜내려면 지출 구조조정이 필수적”이라며 “차기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정치적 결단을 내려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AI 투자 예산을 민관 합작 기금 형태로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송정희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은 “AI 관련 사업자들로부터 출연받아 AI 촉진기금을 만드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과거 정부가 정보화 사업에 썼던 예산을 반영하면 100조 원 이상 기금 마련이 가능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5년간 디지털뉴딜 등에 49조 원을 썼고 윤석열 전 대통령도 3년간 디지털플랫폼정부 등에 36조 6000억 원의 국가정보화 예산(중앙정부·지방정부·공공기관 합계)을 편성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민주당 정책위원회도 ‘한국판 엔비디아’를 만들겠다며 50조 원 규모의 국민참여형 국부펀드 조성 계획을 설명한 바 있다.

김종원 광주과학기술원(GIST) AI대학원장은 “민관이 협력해 ‘공용주차장 개념의 공동 활용 데이터센터’를 만들 경우 개별 데이터센터 구축의 파편화를 해소하면서 공간·에너지 효율성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서 “국내 AI 시장을 지키고 AI 주권도 지킬 수 있는 투자의 지지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염재호 “2030년까지 정부 업무 95% AI 적용해야”
-국가인공지능위원회 부위원장
-"AI·데이터 관장하는 별도 부처 필요"
-"소버린AI·클린 데이터 적극 확보해야"


염재호 국가인공지능위원회 부위원장이 AI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염재호 국가인공지능(AI)위원회 부위원장이 8일 “2030년까지 정부 업무의 95%를 AI와 함께 진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AI위원회는 지난해 9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AI 정책 전반을 심의하는 조직이다.

염 부위원장은 “AI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관장하는 별도의 부처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AI컴퓨팅센터 관장, 기술 개발과 인재 육성, 빅테이터 관리까지 도맡을 조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염 부위원장은 제19대 고려대 총장을 지낸 뒤 태재대 총장을 맡고 있는 교육계 원로이면서 현재는 한국 AI 산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염 부위원장은 AI 업무를 담당하는 별개의 조직이 있어야 정부 업무 전반에 AI를 적용하는 혁신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데이터와 지식재산권 관리, AI 인재 육성 등의 업무가 행정안전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통계청·개인정보보호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 등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어 통합적인 개편을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다. AI 정부로의 변화를 위해 부처 간 칸막이를 넘나들며 AI 관련 업무를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별도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염 부위원장은 AI 전담 조직이 맡아야 할 역할도 제안했다. 그는 “AI 전담 부서가 만들어지면 해야 할 일이 세 가지 정도 있다”며 “우선 AI컴퓨팅센터를 마련해 ‘소버린(주권) AI’를 만들기 위한 컴퓨팅 파워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버린 AI는 각 국가나 지역의 문화·역사·가치관을 반영한 맞춤형 AI다. 오픈AI의 챗GPT와 구글 제미나이 등 해외 빅테크가 이끄는 AI 시장에서 한국에 특화된 주권을 가진 AI 모델을 개발해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염 부위원장은 이어 “획기적인 인재 확충과 ‘클린 데이터’ 활용이 필요하다”며 “통계청을 빅데이터청 혹은 데이터부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린 데이터는 말 그대로 ‘깨끗하게 정제된 데이터’를 의미한다. 오타·오류나 중복된 내용 등 불필요한 내용이 없고 분석·활용이 가능한 상태의 데이터다. 이를 위해서는 원본 상태의 로(raw)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염 부위원장은 “AI가 도입되면 정부 업무가 효율화되고 인력 수요도 많이 줄어들 것”이라며 “남는 인력은 데이터 클리닝 업무와 국민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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