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랑거(68·독일)는 나이가 들고 나서 오히려 더 잘 풀린 ‘시니어의 제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젊은 시절 임팩트도 엄청났다. 주무대인 유러피언 투어(현 DP월드 투어)에서 42승을 쌓았다. 그중 메이저 대회 우승은 두 번. 두 번 다 마스터스에서 했다. 1985년과 1993년이다.
올해 마스터스가 41번째 출전. 랑거는 올해를 끝으로 마스터스를 떠나기로 결심했고 8일(한국 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의 프레스 빌딩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은 마스터스 은퇴 회견으로 진행됐다.
옛 서독 바바리아 지방 출신의 랑거는 “고작 800명이 사는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골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환경에서 여기 마스터스에 (1982년 처음) 초청을 받고 세 번째 출전 만에 우승까지 했다. 믿을 수 없는 여정이었다”고 마스터스 40여 년 도전사를 정리했다.
“그당시 독일에서 골프는 아무도 몰랐어요. 그래서 롤모델도 없었죠. 내 기량을 누구와 비교해야 할지 몰랐어요. 독학밖에 없었고 캐디를 하던 형의 도움도 있었어요. 아홉 살에 나도 캐디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돈을 먼저 좋아하게 됐고 그다음에 골프를 진정으로 좋아하게 됐습니다.”
랑거는 “외국 선수는 마스터스 초청을 받기가 극도로 어려운 때였다. 그런 곳을 처음 왔더니 ‘이렇게까지 잘 정돈된 코스와 이 정도로 정성스러운 대회 운영이 있나’ 놀랄 따름이었다”며 “참가 선수와 우승자, 페이트런(갤러리) 대우 등 믿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고 돌아봤다.
마음 같아서는 영원한 마스터스 출전 선수로 남고 싶겠지만 랑거는 “지금은 그만둘 때가 맞다”고 단언했다. 그는 “코스는 길어지는데 내 샷 거리는 짧아진다. 한창때인 선수들이 9번 아이언을 들 때 나는 하이브리드 클럽을 잡는다”며 “여기서 더는 경쟁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확실해졌다. 손주들까지 현장에서 나의 마지막 마스터스를 응원할 것”이라고 했다. 공포의 붉은 셔츠로 유명한 타이거 우즈(미국) 얘기를 꺼내면서는 “‘빨간 셔츠의 원조는 우즈 당신이 아니고 바로 나’라고 우즈를 놀리고는 했다”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관련기사
오거스타내셔널에서 가장 좋아하는 홀은 13번(파5)이다. 랑거는 1985년 3라운드와 1993년 최종 라운드에 이 홀에서 이글을 했고 우승까지 갔다. 그는 “이글 때문만은 아니다. 순전히 아름다움으로만 따져도 최고”라고 했다.
후대에 남길 메시지, 레전드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남길 조언 등의 질문이 나왔다. 랑거는 “골프는 깨지기 쉽고 변덕스러운 것”이라는 말을 했다. “마치 주식시장 같아요. 잡히는가 하면 또 달아나니까. 메이저 우승자라 할지라도 2년쯤 지나면 소식조차 들리지 않는 게 이 바닥입니다. 나는 그저 신의 은총을 받은 것뿐이지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챔피언스(시니어) 무대 47승으로 역대 1위를 달리는 랑거는 “높아지고 나아질수록 더 어려워지는 법이다. 포기하는 순간 당신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이 1000명은 줄을 선다는 것도 잘 알아야 한다. 더 집중하고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하며 잘 훈련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중요한 것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른 몇몇 것들은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도 남겼다.
마스터스 우승을 위한 ‘시크릿’ 같은 것은 없다고 했다. 그래도 노하우는 있다. 랑거는 “몸은 늙었어도 정신은 앞으로 몇 년 간은 멀쩡할 테니 노하우를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와 기꺼이 공유하겠다”고 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