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에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논할 때 흔히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반면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는 다소 부적절한 평가다.
‘전략적’이라는 표현은 주로 어느 맥락에서 사용할까?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이고 적합한 수단을 선택하고, 이를 통해 목적 달성에 가까워질 때 우리는 그런 선택을 ‘전략적’이라고 평가한다. 따라서 ‘전략적’이라는 표현은 본질적으로 ‘목적 지향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예를 들어 한 국가가 특정 전투에서 패배를 감수하더라도 더 중요한 전투에 집중해 결국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우리는 이를 ‘전략적’ 결정이었다고 평가한다. ‘전략적 후퇴’라는 표현도 이러한 맥락에서 쓰인다.
프로이센의 ‘철(鐵)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독일 민족의 통일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1864년부터 1871년까지 벌였던 일련의 전쟁은 매우 전략적이었다고 평가받는다. 독일 통일이라는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쟁을 주요 도구로 사용했지만 때로는 유연성을 발휘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뚜렷한 목적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명확한 전략을 갖췄고, 그 전략의 실행 과정에서는 유연성을 발휘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의 문제는 ‘전략적 모호성’이 아니라 ‘모호한 전략’이었다. 즉 전략 자체가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의 핵심 국가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중국과의 연대를 강화하려는 것인지, 혹은 남북 관계 개선을 돌파구로 활용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명확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미·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미국과 중국 모두의 불만을 사고, 북한에게도 무시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개념은 ‘명확한 전략’이 전제될 때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명확한 전략’을 기반으로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한국은 지정학적 취약성을 고려했을 때 지역 내 영토적 야심이 없는 역외(域外) 강대국과 동맹을 맺는 ‘외적 균형 전략’이 꼭 필요한 나라다. 미국이 예전의 미국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한미동맹은 한국의 핵심 국가이익을 위해 여전히 중요하다. 아울러 일본, 호주 그리고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 등 자유주의 국가들과 협력의 폭을 확대함으로써 한국 번영의 환경 요인으로 작용해 온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것이 더욱 절실해졌다.
명확한 전략을 추진할 때 꼭 필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전략적 유연성’이다. 이를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이는 복원력을 유지하는 데에도 필요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은 비스마르크처럼 명확한 전략을 갖추되 상황에 따라 유연성과 모호성을 적절히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비(非)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관계도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중국은 여전히 지정학적·지경학적으로 한국에 중요한 국가다. 북핵 문제나 통일 문제 등 한반도 주요 현안에서 중국은 강한 영향력과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세계 2대 경제 강국으로서 한국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국가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한국이 마치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 인식될 만한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두 달 후면 한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신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명확한 전략’을 갖추되 그 전략의 실행 과정에서는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전략의 명확성’과 ‘전략적 유연성’의 조화를 통해 한미동맹 및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궁극적으로는 북한과의 관계도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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