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한 이튿날인 5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였지만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우산과 우비를 쓰고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에 속속 모였다. 가슴팍에 ‘헌금’이라는 단어가 쓰인 명찰을 달고 있는 주황색 조끼를 입은 안내원들이 모이고 있는 지지자들을 집회 장소로 안내하고 있었다.
지지자들은 그간 진행돼왔던 윤 전 지지 집회 때와 마찬가지로 손에 ‘윤석열 복귀’, ‘이재명 구속’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지만 탄핵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탄핵 선고 전에ㅡ-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구호를 외쳤던 반면 이날은 어두운 표정으로 연단에서 목청을 높이는 연사의 말을 묵묵히 듣는 모습이었다.
집회를 개최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목사가 이끄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와 자유통일당 등 보수단체는 그간 주장했던 ‘국민저항권 발동’을 또 강조했다. 붉은색 모자를 쓰고 나온 유튜버 신혜식은 “헌재가 고도의 정치행위까지 심판하고 나섰다”라며 “국민저항권을 발동할 필요가 있다”고 외치자 지지자들은 함성을 질렀다.
격한 발언도 쏟아졌다. 사회를 맡은 유튜버 손상대는 “내가 권투를 잘 했으면 헌법재판관들 턱에 주먹을 날렸을 텐데 그러지 못한다”며 “대신 날려줄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한다”며 홍수환 전 권투선수를 연사로 소개했다. 홍 전 선수는 연단에 나와 윤 전 대통령의 파면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후손을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본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전광훈 목사는 “헌재의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 국민저항권으로 해체시켜야 한다”며 지지자들에게 호소했다.
집회에 자주 나타나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만 윤상현 의원만 집회에 참가해 “윤 대통령을 지키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로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집회를 진행했지만 중간중간 격한 반응을 보이는 지지자들도 눈에 띄었다. 한 지지자는 “사법부와 입법부가 모두 다 썩었기 때문에 이제는 국민이 직접 행동해야 한다”며 “피를 흘려야 끝날 문제다. 목숨 걸고 싸우자”고 외치고 다녔다. 외국인 보행자에게 “Kill 이재명”이라고 소리치는 지지자도 보였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8대0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을 향한 분노도 쏟아졌다. 한 지지자는 “헌법재판관들이 미리 짜고 정치적으로 윤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며 “제2의 이완용들이나 다름 없으니 헌재를 해체해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당 가입 관련 모객행위도 지속됐다. 광화문역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동화면세점 앞에 천막을 설치한 자유통일당은 “당원으로 가입해야 국민저항권 발동이 가능할 것”이라며 가입을 촉구했다. 전광훈을 지지하는 조직인 ‘자유마을’에 가입하라는 권유도 연단을 비롯해 곳곳에서 나왔다.
주최 측은 전날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집회를 연 뒤 탄핵 선고 직후 “주말에 광화문으로 모이라”고 공지한 바 있다. 당시 전광훈은 지지자들에게 “광화문에 3000만 명이 모일 것”이라며 지지자들을 독려했다. 오후 3시 기준 집회측은 100만 명이 모였다고 밝혔지만 경찰 측은 비공식 추산 1만5000명이 광화문에 집결했다고 집계했다.
전광훈 측과 보수세력의 양대 세력을 이루던 기독교 단체 세이브코리아 측은 윤 전 대통령 파면이 선고되자 “대한민국의 일원으로서 헌재의 선고에 승복한다”며 당초 예정됐던 여의도 집회를 취소했다. 때문에 윤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지지자들은 대부분 이날 광화문으로 모였다.
탄핵 찬성 단체들도 집회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오후 3시 30분부터 민주노총과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등이 광화문 앞 동십자각 인근에서 집회를 진행한다. 경찰은 전날 오후 6시를 기해 가장 높은 수준의 비상근무단계인 ‘갑호비상’을 해제했지만 서울경찰청에 한해서 두 번째 단계인 ‘을호비상’을 유지하고 집회 관리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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