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절반 수준으로 낮춘 영국 정부가 복지 지출과 행정 비용을 대폭 줄이며 재정 긴축에 나섰다. 반면 국방 예산은 크게 늘려 글로벌 안보 불안 속 ‘방산 초강대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은 26일(현지 시간) 정부 지출을 총 140억 파운드(약 26조 원) 줄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정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무역 환경의 불안정과 세계적 불확실성이 영국의 공공 재정과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정책에 따른 영향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영국 예산책임청(OBR)은 올해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전인 지난해 10월 2% 성장 전망에서 절반 수준으로 낮아진 것이다. 더타임스는 생산성 저하, 세금 인상에 따른 기업 심리 위축, 시장 기대보다 낮은 기준금리 인하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경제성장 전망이 악화했다고 짚었다. 다만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1.8%에서 1.9%로, 2027년 전망치는 1.5%에서 1.8%로 각각 상향 조정됐다.
경제성장에 적신호가 켜지자 영국 정부는 증세 대신 지출 삭감에 나섰다. 건강복지수당과 장애인 대상 개인자립지원금(PIP) 지급 규모를 줄이는 한편 정부 부처 행정 비용을 2030년까지 15% 줄이고 자발적 퇴직 등을 통해 공무원 약 1만 명의 감원을 추진할 계획이다.
OBR은 복지 삭감으로 48억 파운드(약 9조 1000억 원), 행정비 절감으로 36억 파운드(약 6조 8000억 원)를 아낄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약 320만 명이 복지 혜택을 잃고 25만 명이 빈곤선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 해외 원조도 2030년까지 26억 파운드(약 5조 원) 줄이기로 했다.
반면 국방 예산은 2025~2026회계연도에 22억 파운드(약 4조 2000억 원) 증액돼 GDP의 2.36%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키어 스타머 총리는 2027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2.5%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리브스 장관은 “영국이 ‘방위산업의 초강대국’이 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조치에도 재정 상황이 개선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OBR은 미국이 모든 수입품에 20% 관세를 부과하면 영국 GDP가 1% 줄어들고 재무부가 목표로 하는 99억 파운드(약 19조 원)의 재정적 여유분이 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한편 이날 야당 보수당과 노동당 일각에서는 재무 계획에 대해 “지붕이 무너지고 있다” “복지 삭감은 빈곤 악화”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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