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월 31일 프랑스 엘리제궁에서 마주앉은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체제하의 미국 핵우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핵 개발에 나선 프랑스를 만류하기 위한 자리였다. 미국이 유럽 안보를 책임지겠다며 프랑스의 핵 전략 폐기를 촉구하는 케네디 대통령에게 드골 대통령이 물었다. “파리를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는가.” 핵무장을 완성한 드골 대통령은 결국 1966년 나토를 탈퇴했다. 프랑스가 나토로 복귀한 것은 43년이 지난 2009년의 일이다.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대륙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핵우산에 의존해왔다. 1966년 체결된 핵 공유 협정에 따라 독일·벨기에·이탈리아·네덜란드에는 전술 핵무기가 배치됐다. 하지만 그 뒤로도 프랑스는 유럽 차원의 핵 안보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했다. 2007년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자국의 핵전력 공유를 제안하기도 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은 프랑스가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20년 유럽 안보를 위한 프랑스의 핵 억지력 역할에 대해 전략적 논의를 하자고 유럽 국가들에 제안하며 거듭 유럽의 핵 안보 이슈를 들고나왔다.
미국의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우크라이나 종전 협의 과정에서 유럽 내 자체 핵우산 논의가 불붙고 있다. 자국 이익만 앞세우는 미국의 핵우산을 믿을 수 없게 된 독일이 그동안 거절해온 ‘유럽 핵우산’ 제안에 동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차기 독일 총리가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21일 한 인터뷰에서 “유럽 내 핵무기 보유국인 영국, 프랑스와 핵 공유 등의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려 80여년간 미국을 중심으로 유지돼온 국제 안보 질서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우리도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유지하려면 강력한 자체 군사력을 키우고 유사시 핵 안보 확보를 위해 핵 잠재력을 갖추는 방안까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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