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민주당은 성장을 중요시하는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규정한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그는 전날에도 “우리는 원래 진보가 아니다”라면서 “민주당은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민주당은 경제 중심 정당”이라고 언급한 이 대표는 20일 충남 아산의 현대자동차 공장을 찾아 “기업의 성장은 나라 경제 성장의 전부”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과거 “1%만을 위한 나라에서 99%가 이용당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며 편 가르기식 강경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가 요즘 강성 진보 색채를 지우기 위해 애쓰는 것은 조기 대선 가능성을 의식한 중도층 외연 확장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의 ‘우클릭’ 발언이 신뢰를 얻으려면 입법과 정책에서 시장 친화적 입장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이 대표와 민주당의 실제 행동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 대표는 반도체 업계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예외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더니 결국 주 52시간제 예외를 뺀 반도체특별법을 처리하자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이에 앞서 불법 파업 조장 우려가 있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과 기업인 소환을 언제든지 할 수 있도록 한 국회증언감정법 등을 밀어붙였다. 민주당이 반(反)기업·반시장적 입법을 계속 추진한다면 국민과 기업들이 이 대표의 ‘노선 전환’ 주장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회민주당은 각각 ‘제3의 길’과 ‘신중도’를 내걸고 중도로 전환해 집권에 성공하고 국정 성과를 거뒀다. 이들은 먼저 치열한 당내외 토론을 거쳐 공감을 얻었다. 반면 이 대표는 중도보수 철학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공론화 없이 급히 ‘핸들’을 꺾었다. 그러니 당내에서 “정체성을 대표 혼자 규정하는 것은 월권이자 몰역사적(김부겸 전 총리)” 등의 비판이 쏟아지는 것이다. 이 대표가 나라의 미래와 경제를 위해 중도보수의 길로 가고 싶다면 충분한 토론을 거쳐 당의 노선으로 정립하되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등 헌법 정신과 민간 주도 성장 우선 정책 등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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