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028260)·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가 회계부정 의혹에 대해 “경제적 실질에 부합한다고 볼 여지가 크기 때문에 이를 부정회계로 단정짓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김선희·이인수 부장판사)는 800여 쪽이 넘는 2심 판결문에서 230여 페이지 분량으로 부정회계 부분에 대한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2심 재판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 여부가 쟁점이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2015년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합작사인 바이오젠의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부채로 인식하면서 자본잠식을 회피하기 위해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해 지배력 상실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반면,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은 자본잠식을 피하려 결론을 미리 정하고 이를 합리화하는 방식의 회계처리를 위법하다고 간주했다. 사실상 분식회계로 본 셈이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행정법원의 판결을 반영해 공소장을 수정했다. 검찰은 “원칙 중심의 회계처리에서 회계처리 과정, 목적, 동기 등이 중요하다”며 “특정 결론을 정하고 그에 맞게 처리하는 것은 부정회계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미리 정한 결론이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대안 중 하나였다면 부정회계로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또한 “회계처리 결과가 특정인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만으로 부정회계가 된다고 할 수 없다”며 “보고기업의 경제적 실질에 부합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한 부정회계로 제재할 필요성도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원칙 중심의 회계에서 요구되는 ‘합리적 이유와 근거’는 객관적으로 최선의 대안을 선택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충분하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주관적인 선의까지 심사할 필요는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일부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결과는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므로 합리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특히 2014년 말 삼성바이오가 콜옵션 평가불능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문구를 바꾸거나 날짜를 소급하는 등의 조작 행위가 있을 여지가 있음을 언급했다. 그러나 해당 판단이 삼성바이오의 지배력 상실이라는 경제적 실질에 부합해 최소한의 합리성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