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각, 적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잠수함이 동해에서 활동 중. 탄도미사일 발사 징후 포착. 총원 전투 배치.”
지난달 31일 오후 부산 해군작전기지에서 제주해군기지로 이동 중인 최신예 이지스 구축함 ‘정조대왕함(DDG-II·8200톤 급)’ 승조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SLBM을 장착한 적의 잠수함이 함경북도 동방 해상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가상 상황이 부여된 것이다.
1박 2일 동안 진행된 이번 훈련은 하반기 실전 배치되는 정조대왕함의 전력화 과정의 일부다. 해군은 이례적으로 전력화 중인 함정에 취재진을 태워 주요 훈련 상황과 함내 곳곳을 공개했다.
정조대왕함은 북한 탄도미사일의 작전구역 내에 스파이(SPY) 레이더의 집중 탐색구역을 설정하고 미사일 탐지를 시작했다. 얼마 후 정조대왕함 전투지휘실(CCC) 레이더 작동수가 전투 체계 화면에서 적의 SLBM이 남서쪽 방향으로, 즉 우리나라 육지로 비행하는 것을 포착했다. 함내에 방송이 울려퍼졌다. “현 시각, 적 SLBM 추정 발사체 접촉. 대유도탄 방어 태세 1단계 설정. 전 무장 즉각 사용 준비.”
곧바로 적의 SLBM을 요격하라는 합참의 지시가 떨어지고 요격미사일이 발사됐다. “표적 도착 5초 전, 4, 3, 2, 1, 도착! 적 SLBM 레이더상 소실.” 정조대왕함이 900㎞ 떨어진 적의 잠수함 활동을 확인한 후 SLBM을 요격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1조 30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해군의 최신예 이지스 구축함이 그 진가를 여실히 증명한 것이다. 정조대왕함은 길이 170m, 높이 48m, 폭 21m로 한국 해군이 보유한 전투함 가운데 가장 크다. 배수량 8200톤, 최고 시속 30노트(55㎞), 항속거리 1만 200㎞로 구축함 중에서도 최고의 성능을 자랑한다.
이번 훈련은 향후 도입될 탄도미사일 요격용 SM-3, SM-6 함대공 미사일 작전을 연마하는 데 중점을 뒀다. SM-3(블록-Ⅰ)의 사거리는 700여 ㎞로 고도 500여 ㎞에서 날아오는 적의 탄도미사일 요격이 가능하다. 또 SM-6는 최대 34㎞ 고도로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으며 사거리는 240~460㎞다.
정조대왕함은 훈련 이틀째인 이달 1일에는 해상에서 대잠수함 작전을 펼쳤다. 훈련에는 P-3 해상초계기와 정조대왕함에 탑재 가능한 ‘링스’ 해상작전헬기도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동참했다. 링스 헬기는 적 잠수함의 예상 위치로 전속 기동해 저주파 고출력 디핑 소나(dipping sonar)를 물속으로 날렸다. 탐지 시작 5분 만에 정조대왕함 정보실에서는 수중 미식별 접촉물을 찾아냈다.
상급 부대로부터 인근 해역에 우군 잠수함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미식별 수중 접촉물에 “즉각 수면 위로 부상하라”고 수중 통신을 발신했으나 답은 없었다. 정조대왕함은 곧장 적의 잠수함으로 판단하고 장거리 대잠유도무기 ‘홍상어’를 발사했다. 잠시 후 수십 m에 달하는 물기둥이 솟구쳐 올랐고 적 잠수함은 완전히 파괴됐다.
긴박했던 임무 상황을 성공적으로 마친 정조대왕함은 1일 해군 기동함대사령부 창설 행사를 빛내려 제주해군기지에 도착했다. 정조대왕함은 전력화를 마치면 기동함대사령부의 기함이자 해상 기반 한국형 3축 체계의 핵심 전력으로 활동한다. 기동함대에는 정조대왕함을 포함한 이지스 구축함 4척 등 구축함 10척과 군수 지원함 4척이 배치됐다. 모항은 제주해군기지다.
이번 훈련을 주관한 조완희 정조대왕함장(대령)은 “정조대왕함은 해군의 미래를 대표하는 첨단 이지스 구축함으로 적의 해상 도발 위협에 대비해 실전과 같은 강도 높은 교육·훈련을 통해 최상의 전투 준비 태세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인호 기동함대사령관(소장)은 “유사시 압도적 전력으로서 전승을 보장하고 정부 정책을 힘으로 뒷받침하는 부대로 발전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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