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대통령 자유의 메달’ 수여식에 트위드 블레이저, 검은색 니트 넥타이, 스니커즈를 신은 80대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름 아닌 수십 년간 미국 패션의 대명사로 불린 디자이너 랠프 로런(85)이다. 로런은 이날 패션 디자이너 중 처음으로 미 대통령 자유 메달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로런은 고전적이면서도 창의적이고, 시대를 초월하면서도 혁신적”이라고 소개됐다. 또 ‘몽상가와 행동하는 이들의 나라’로서 미국의 독특한 스타일을 상기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 대통령 자유 메달은 미국의 안보와 국익, 세계 평화, 문화 예술 등 분야에서 탁월한 공적을 쌓은 인물에게 대통령이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이다. 이와 관련해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자유의 메달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면 바로 로런일 것”이라고 전했다.
뉴욕 브롱크스에서 이민자 부모 밑에서 태어난 로런은 상류층 지향적인 이미지를 대중에 마케팅해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수백만 달러 규모의 대기업으로 키웠다.
1967년 남성 넥타이 라인을 선보이며 의류 시장에 진출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한 쇼룸에서 판매했다. 곧이어 신발부터 수트를 아우르는 프레피룩 브랜드를 선보였다.
이후 그는 청바지, 폴로셔츠, 흰색 티셔츠, 플란넬 셔츠, 워크 부츠 같은 전형적인 미국식 옷차림의 기본 요소를 완성해 대성공을 거뒀다.
로런은 2023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미국적인 것들을 좋아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국기인 성조기가 그려진 스웨터는 랠프로런의 인기 상품이기도 하다. 로런은 수십년간 미국 올림픽 운동복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그는 홈 데코 제품까지 브랜드를 확장했고 광고 캠페인에 자동차로 가득한 차고와 광활한 목장, 가죽 가구, 안장 담요 등 잘 다듬어진 ‘올 아메리칸 룩’을 선보였다.
로런은 여전히 회장 자리에 있으면서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를 맡고 있다. 정치 성향을 떠나 그의 옷은 정계에서도 인기가 많다. 낸시 레이건, 미셸 오바마가 백악관 시절 랠프로런 제품을 입었고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도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취임식에서 랠프로런 드레스를 입었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 부부와 인연이 깊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취임식에서 이 브랜드의 코트와 수트를 입었고 질 바이든 여사도 이 브랜드 디자인을 착용한 모습이 종종 카메라에 포착됐다. 바이든 여사는 지난해 9월 랠프로런 런웨이 쇼에 게스트로 참석하기도 했다.
이번 메달 수여자 중에는 또 다른 패션 아이콘 애나 윈터도 있었다. 1988년부터 패션 잡지 보그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그는 민주당의 오랜 지지자이기도 하다. 그는 시상식에서 “패션을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로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축구의 신’이라고 불리는 리오넬 메시도 자유의 메달을 받았다. 또 무하마드 알리(권투), 마이클 조던(농구), 아서 애시(테니스), 시몬 바일스(체조) 등도 자유의 메달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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