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시도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중지 명령으로 제동이 걸리면서 양국 관계에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일본제철은 ‘정치적 판단이 개입됐다’며 반발했고 일본 정부도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이번 사안이 기업 간 거래를 넘어 미일 동맹 문제로까지 비화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일본제철은 소송을 포함한 다양한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3일(현지 시간) 성명에서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시도에 대해 “국가 안보와 매우 중요한 공급망에 위험을 초래한다”며 30일 이내에 인수 계획을 완전하고 영구적으로 포기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라고 두 회사에 명령했다. 일본제철은 2023년 12월 US스틸을 약 141억 달러에 인수하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전미철강노조(USW)와 일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미국 산업화의 상징인 회사를 일본 기업에 팔 수 없다’는 반대가 확산해 난관에 봉착했다. 이후 미국 대선과 맞물려 거래를 둘러싼 논의가 정치 이슈로 변질되자 미 정부는 인수 심사를 선거 이후로 미뤘다.
이번 결정에 일본제철뿐만 아니라 인수를 뒷받침해 온 일본 정부도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무토 요지 일본 경제산업상은 미국의 발표 직후 논평을 내 “이해하기 어렵고 유감”이라고 밝혔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이 CFIUS 심사를 근거로 인수 중지를 명한 것은 총 8건이다. 이 중 7건은 인수 주체가 중국 관련 기업으로 동맹국 기업에 대한 중지 명령은 전례가 없었다. 요미우리는 “동맹국인 일본 기업의 인수 계획을 미국 대통령이 저지한 것은 ‘이례적 사태’”라며 “미일 관계에 화근을 남긴 용납하기 어려운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내에서도 우려가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동맹 손상 등의 우려로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 외교 관련 관료들은 거래를 유지할 수 있는 옵션을 추진하자는 입장이었다”고 보도했다.
일본제철은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올 6월까지 인수를 완료하지 못하면 US스틸에 5억 6500만 달러의 위약금을 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제철이 상정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소송을 통한 장기전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제철은 바이든 대통령의 중지 명령이 아닌 CFIUS의 의사 결정 과정의 하자를 문제 삼아 소송을 걸 수 있다. 2014년 중국 기업이 같은 방식으로 소송을 내 이긴 사례가 있다. 다만 당시 판결까지 2년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이긴다 해도 일본제철의 해외 전략에는 지연이 불가피하다.
두 번째는 US스틸과 자본 제휴를 하거나 일부 시설만 인수하는 그림으로 완전 자회사 대신 지분율을 낮춘 형태로 접근하거나 전기로(電氣爐) 부문만 인수하는 쪽이다.
마지막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입장 번복’에 기대를 거는 쪽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때부터 ‘완전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지만 ‘제조업의 미국 회귀’를 강조하는 정책 기조를 고려할 때 일본제철이 추가 투자를 제안해 설득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닛케이는 “가능성이 낮고 기존에 발표한 27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 외에 추가로 재무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일본제철은 2월 2일까지 인수 포기 증명서를 내야 한다.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려면 이날까지 법원에 인수 포기 명령을 일시 중단해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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