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 강세와 높은 국채 수익률에 일본 엔화와 신흥국 통화가 압박을 받고 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5개월 만에 낮은 수준으로 내려앉았고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올해 들어 30% 가까이 떨어졌다. 자국 내 경제·정치적 요인에 더해 차기 미국 행정부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까지 겹쳐 주요국 통화 약세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7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엔화는 전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한때 달러당 158엔을 찍으며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고용지표가 금리 인하 속도를 둔화시킬 것이라는 전망 속에 미국의 장기금리가 5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이 최근 3회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추가 인상에 신중한 입장을 내비친 것과 맞물려 엔화 매도, 달러 매수세는 심화하는 양상이다. 엔화는 올해 들어 12% 하락했다.
신흥국 중에서는 브라질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헤알화는 연초 이후 달러 대비 가치가 27% 폭락했다. 헤알화 약세의 첫 번째 원인은 도널드 트럼프 정권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에 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과 고율 관세 부과가 미국은 물론 중국에 원자재를 수출하는 신흥국에도 타격을 입히고 시장의 불확실성 증가로 달러 선호(강세) 흐름이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달러로 자금이 옮겨가면서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신흥국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내년 신흥국으로의 자금 유입은 올해 9440억 달러에서 7160억 달러로 24%나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헤알화는 내부적으로 심각한 재정위기까지 겹쳤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2023년 1월 취임했을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4.6%였던 재정적자가 지금은 9.5%까지 불어난 상태다. 시장에서는 “현 시점에 긍정적인 재정 서프라이즈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앙은행이 달러 매도를 통한 대규모 시장 개입에 나서며 환율 방어에도 나섰지만 불안을 덜어내진 못하고 있다.
멕시코 페소화도 올해 들어 크게(달러 대비 -19%) 꺾였다. 트럼프의 고율 관세 부과 방침과 이민자 추방 계획은 물론 6월 치러진 멕시코 대선과 총선을 전후해 헌법 개정안이 다수 승인되면서 투자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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