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심해지자 미 의회는 벨기에 출신 경제학자인 로버트 트리핀 예일대 교수를 출석시켰다. 미 의회에 나온 트리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출범한 브레턴우즈 체제가 기축통화의 구조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금 1 온스=35 달러’로 고정해 태환하게 하고 다른 국가는 자국 통화를 조정 가능한 환율로 달러로 바꿀 수 있게 한 이 체제가 미국의 만성적 무역 적자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은 만성적 무역 적자를 줄이자니 고정환율제가 흔들릴 수 있고, 고정환율제를 지키자니 무역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처했다. 이후 ‘트레핀 딜레마’는 국제금융시스템의 근본적인 모순을 뜻하는 용어로 널리 쓰였다.
트리핀의 경고 이후에도 미국의 무역 적자가 지속되고 달러 공급이 늘어나면서 달러 가치는 하락했다. 1960년대 말에는 달러 발행량이 미국 정부 보유 금보다 많아져 금 태환이 불가능해질 것이 우려되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다수 국가들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잇따라 요구했다. 결국 금 태환은 정지됐고, 각국에 환율 제도의 재량권을 부여하는 ‘닉슨 쇼크’가 발생했다. 하지만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에 석유 결제 대금을 달러화로 받도록 만들어 달러 수요를 늘리면서 기축통화국 지위를 이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최근 러시아·중국 등 신흥경제국 협의체인 브릭스(BRICS)를 겨냥해 “달러 패권에 도전하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 비중을 줄이려는 브릭스의 탈(脫)달러 행보와 각국 중앙은행들의 외환 정책 다변화에 제동을 건 셈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관세 폭탄’ 등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펴면 달러의 위상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와 전 세계적인 달러 수요 등을 감안하면 달러 지위가 그리 쉽사리 흔들리지는 않을 듯하다. 트리핀 딜레마가 당장 닥치지는 않을지라도 우리는 기축통화 전쟁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보호주의 흐름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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