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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나라를 다시 짜야 할 때다

경제 황혼기 접어들었다는 우려 커

근본적으로 시스템 고치지 못하면

4만달러 국민소득커녕 중진국 추락

대화와 타협으로 구조 개혁 나서야

오현환 논설위원




1592년 4월 13일(음력) 일본군이 부산에 들이닥쳤다. 부산진성은 한나절 만에, 동래성은 이틀 만에 함락됐다. 대구·상주·충주에서도 저항했지만 불과 20여 일 만에 수도 한양이 점령됐다. 선조는 의주까지 피란을 가서 명나라로의 피신을 저울질했다. 전시수상(영의정)과 군 최고사령관 격인 도체찰사로서 온몸으로 전쟁을 치러냈던 류성룡과 제해권을 장악했던 이순신 등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이 임진왜란으로 허무하게 무너진 것은 개국한 지 200년이 된 나라에 성한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대비해 군사력을 키우지 못했고 조세체계의 폐단으로 국고는 텅 비었다. 조정은 당쟁에 몰두하면서 국정 운영을 뒷전으로 내팽개쳤다. 이이는 나라를 ‘썩어가는 1만 칸의 큰 집’에 비유하며 개혁을 요구하는 상소를 끊임없이 올렸다. 류성룡도 전쟁 직전에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인재는 사라지고, 군비는 허술하며, 민심은 흩어져 나라를 다시 짜야 할 때”라는 글을 선조에게 올렸다. 일본에서는 100년가량의 전국시대를 끝낸 강력한 통일 정권이 등장했고 북쪽에서도 누르하치가 만주 일대 통합을 완성해가며 부상하는데도 조선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조선은 붕당정치로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조선을 놓고 일본과 청, 일본과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는 지경을 맞은 후 싸워보지도 못하고 송두리째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사이먼 존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 교수는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결합해 독보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낸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라며 남북한의 체제 차이가 오늘날의 격차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2021년 기준)과 국내총생산(GDP)이 각각 북한의 30배, 64배 이상 많은 것은 시장에 기반한 경제를 일궈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도성장을 성취했던 우리 경제가 이제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10년 평균 장기 경제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줄더니 급기야 잠재성장률이 올해 1%대로 주저앉을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 등 후발국의 거센 추격으로 국내 제조업의 주력 제품 가운데 80%가량이 ‘레드오션’에 직면해 있다. 국민연금은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기금이 39년 후에 모두 소진될 것이라고 한다. 여야가 올해 3월 어렵게 합의해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을 했지만 기금 고갈 예상 연도를 고작 9년을 늦추는 데 그쳤다. 평균수명이 1980년 66.1세에서 올해 83.5세로 17.4세가 늘어났는데도 복지 급여의 기준이 되는 노인 연령은 여전히 65세로 44년 전 수준에 멈춰 있다.

늦기 전에 경제·사회 시스템을 수술하지 못하면 1인당 국민소득 4만~5만 달러 시대로 진입하기는커녕 다시 중진국으로 주저앉게 될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되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방치하면 미래 세대의 허리를 휘게 할 수 있는 연금 구조를 서둘러 개혁해 장기적으로 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을 통합해야 한다. 글로벌 정글에서 뛰는 우리 기업들이 같은 조건에서 해외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법인세·상속세 등 세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수술해야 한다.

빠른 추격자에서 시장 선도자로 변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 환경에 절실한 창의성 넘치는 교육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여권은 행정부와 국회 권력까지 장악하고 있는데 방송사까지 ‘정권의 나팔수’로 만드는 ‘방송 3법’을 강행하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화와 타협’ 의지에 반하는 것이다. 파업 조장 우려가 있는 ‘노란봉투법’과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더 센 상법’은 ‘관세전쟁’으로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의 등에 칼을 꽂는 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은 성장의 주역인 기업을 옥죌 것이 아니라 마음껏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줘야 할 때다. 국가 대항전으로 펼쳐지는 글로벌 경제 전장에서 우리 기업이 살아남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건 힘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만 가능하다. 왜란과 호란을 겪고도 나라를 바로 세우지 못했던 ‘조선의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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