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로서 회사의 생존과 지속 가능한 성장 방안을 늘 고민했습니다. 합병 추진은 두 회사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5일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추진된 것이 아니라 가치 성장을 위해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은 이날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김선희·이인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 결심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1심과 같은 징역 5년 및 벌금 5억 원을 구형했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과 김종중 전 미래전략팀장에게도 원심과 같이 각각 징역 4년 6개월에 벌금 5억 원,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실차장에게는 징역 3년에 벌금 1억 원을 구형했다.
이 회장 측은 합병은 대주주 승계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사업적 필요성을 위한 판단이라는 주장을 요지로 최종 변론을 진행했다. 주주를 기망할 의도가 없었으며 외부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합병 비율을 정하고 사업적 시너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최종 진술에서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투자자들을 속일 의도는 결단코 없었다”며 “법의 엄격한 잣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밝혔다. 이어 함께 재판에 넘겨진 직원들에게 재판부의 선처를 바란다는 뜻도 전했다.
삼성 측은 합병이 대주주의 권력 남용으로 추진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합병으로 차후에 발생할 손해를 미래전략실과 합병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조사했다는 것이 그 근거다. 이어 변호인 측은 “사업적 필요성과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바이오산업 등의 영역에서 사업 효과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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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총수의 사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고 정보의 비대칭성을 악용했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을 펼쳤다. 이 회장 측은 “합병을 반대한 엘리엇은 홈페이지에 대대적으로 의견을 개진했기 때문에 주주 입장에서 삼성 쪽에서는 합병의 긍정적 측면을, 엘리엇은 불리한 측면을 강조하고 있던 상황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며 합병을 위해 허위사실을 알리고 실체를 은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양사 합병이 오로지 이 회장의 승계를 목적으로 추진됐다는 점에 대한 근거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통한 사업적 시너지를 실질적으로 검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합병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점도 재강조했다. 검찰은 “양사 합병 과정에서 부정한 행위가 없었고 투자자들이 (부정한 점을) 그대로 인지했다면 불리한 비율에 이뤄지는 합병에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 회장 측 변호인은 “(공개한 합병 관련 내용에는) 투자 위험 요소만 200면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엘리엇이 주장하는 내용까지도 포함돼 있다”며 “법원도 당시 합병 찬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상세한 정보가 공개됐다고 판단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합병 발표 이후 언론 및 증권사를 통해 지배구조와 관련한 내용이 공개돼 지배력 강화를 위해 합병을 추진했다는 목적을 숨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검찰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2012년부터 추진한 각종 부정 거래와 시세조종 등에 관여한 혐의가 있다며 2020년 9월 1일 기소했다. 지난해 11월 17일 열린 결심공판에서는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 원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올해 2월 3년 5개월에 걸친 심리 끝에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합병의 필요성 및 비율이 부당하다는 검찰 측의 주장은 추상적인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으로 업무상 배임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밖에 합병 과정에서 부당 행위 입증이 불가하고 합병 자체가 단순히 기업 승계를 위해 이뤄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주의 피해를 전제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판단의 근거다.
항소심 재판부는 내년 2월 3일로 선고기일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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