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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 지수' 넘어 '폭력 지수' 끌어올린 폭염… 여름철 폭력범죄 최다 [폴리스라인]

"여름 기온 1도 오르면 살인·폭력 32건 증가"

지난해 폭력범죄 통계 살펴보니…6~8월 多

공격성 억제하는 세로토닌, 고온에 줄어든다

"세계 범죄, 2090년 5% 상승 가능" 전망도





올해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습니다. 기나긴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며 체력적·심리적 취약함을 호소한 시민들도 많았는데요, 실제로 기온이 치솟을수록 사람들의 스트레스와 폭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는 전 세계에서 여러 차례 발표된 바 있습니다. 서울경제신문이 국내 폭력 범죄 데이터를 살펴보니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라 매년 ‘더 뜨거운’ 여름이 닥치는 만큼 추후 계절 범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더위에 녹아내린 판단력… “폭력성 높아진다” 연구 결과도


연합뉴스


7일 경찰청이 제공한 지난해 월별 폭력범죄 검거 건수를 분석한 결과 가장 폭력 범죄가 많이 발생한 달은 6월(1만 8550건), 7월(1만 8179건), 8월(1만 7964건)이었다. 여름철이 줄지어 상위 3위를 차지한 셈이다. 반면 기온이 뚝 떨어진 12월의 경우 검거 건수 역시 1만 4000여 건으로 크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청 제공


이밖에 2022년 역시 8월에 1만 9368건, 6월 1만 9069건, 7월 1만 8872건으로 각각 1,2,4위를 기록하는 등 상위권인 모습이었다. 마찬가지로 겨울(12월~2월)에는 8월보다 검거 건수가 2000~6000여 건 줄어들었다.

이 밖에도 올해 2월 예일 환경대학의 허슬기 교수 연구팀은 과학학술지 네이처(Nature)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한 논문에서 '한국 폭력범죄에 기온이 단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발표하고 2016~2020년 국내 범죄 데이터를 시계열 분석한 결과 "강력범죄가 기온과 비례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28도 이상에서 가장 높은 위험도를 나타냈다"며 "특히 폭행·가정폭력 건수가 크게 증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후변화에 매년 기온 오르는데…"미래 도시 범죄 위험 높아" 우려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위로 지열에 의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높은 온도와 습도가 폭력범죄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는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발표돼 왔다. 과거 '글로벌 기후변화가 선진국 및 개발도상국에서의 폭력에 미치는 영향’(2011년) 논문은 “1도 상승할 때 인구 10만명 당 폭력·살인 범죄는 약 32건 증가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2022년 날씨와 범죄의 관계를 다룬 200개의 기존 연구 데이터를 재분석한 결과(Weather and crime: a systematic review of the empirical literature)를 발표한 학자 조너선 코코란·러네이 자노는 “기온과 계절은 재산 범죄보다 폭력 범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기온이 올라갈 경우 인체의 교감신경이 항진되면서 '세로토닌'을 비롯한 신경전달 물질을 낮추게 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공격성·우울 등의 감정을 억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 물질이 줄어들 경우 자살이 증가하거나 또 폭력성이 증가하면서 도시 범죄율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숭례문 지하보도에서 60대 환경미화원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리 모 씨가 지난달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8월 초 발생한 ‘숭례문 지하보도 환경미화원 흉기살해' 사건 역시 내막을 들여다보면 폭염과의 연관성이 있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는 당초 여인숙에서 지내왔으나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집이 너무 더워지자 새벽께 잠에서 깨 바깥으로 나왔다가 마주친 미화원에게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폭염에 열악한 도시빈곤층의 주거 환경, 더위로 인한 신체적 공격성 증가 등이 범행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다.

전문가들 “생활패턴 영향 미치는 날씨…치안 정책에도 반영해야”



지난달 18일 밤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에서 시민들이 달빛무지개분수를 감상하며 열대야를 피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는 "기본적으로 더위 때문에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폭력이나 싸움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더위 때문에 문을 열고 지내는 생활 패턴이 성범죄, 강도, 절도, 주거침입 등의 범죄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극한 폭염’이 닥칠 미래에 더 많은 폭력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걱정도 커지고 있다. 2022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폭염과 정신건강’ 보고서 역시 “주변 온도가 1~2도만 올라도 폭력 범죄가 3~5% 증가한다”면서 지구온난화 현상이 2090년까지 전 세계 모든 범죄율을 최대 5% 끌어올릴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제시했다.

이에 염 교수는 “최근 경찰이 기동순찰대 등 기본적인 생활 안전 분야의 순찰 활동 강화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계절 범죄 단속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추가적인 범죄 예측 시스템을 통해서 ‘극한 날씨’가 잦은 계절에 문제지역에 대한 순찰을 더욱 집중적으로 할 필요도 있다”는 해결책을 제안했다.

허 교수의 연구팀도 "공공안전을 위협하는 폭력 범죄는 예방 및 통제 노력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면서 "고온과 폭력 사이의 연관성이 전반적으로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온과 관련된 폭력 범죄에 대한 예방 조치는 모호(uncertain)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후 대응 정책에 대해 논의할 때 (친환경 정책이) 폭력 범죄 발생률을 낮출 수 있다는 잠재적 이점도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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