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부 작센주(州)의 주도 드레스덴은 한때 ‘엘베강의 피렌체’로 불릴 정도로 문화유산이 풍부한 도시였다. 1728년에 지어진 작센왕조의 츠빙거궁전과 드레스덴대성당을 비롯한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거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산업혁명 시기에는 기계·자동차 산업 등이 발달한 공업도시로도 융성했다. 그러나 문화와 경제의 중심이던 드레스덴은 1945년 2월 한순간에 폐허로 변했다. 연합군의 대규모 폭격으로 문화재와 공장이 파괴되고 최대 2만 5000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몰락한 공업도시였던 드레스덴이 첨단 반도체 도시로 부활하고 있다. 인피니언·글로벌파운드리 등 글로벌 반도체 대기업들이 집결하면서 일대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됐다. 유럽판 실리콘밸리라는 뜻에서 ‘실리콘 작소니’라는 별명도 얻었다. 작소니(Saxony)는 작센왕조가 지배했던 작센주 일대를 일컫는 말이다. 크고 작은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들어서면서 현재 첨단산업 종사자만 해도 약 7만 6000명에 이른다. 2030년까지 1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대만 TSMC가 이곳에 유럽 최초의 반도체 생산 기지를 짓기 시작했다.
실리콘 작소니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풍부한 기술 인력과 지리적인 조건이 꼽힌다. 19세기 초 작센기술학교가 모태인 드레스덴공대는 기술 인력의 공급처 역할을 한다. 이 대학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통일 독트린을 밝힌 곳이기도 하다. 드레스덴은 엘베강을 끼고 있어서 용수 조달이 용이한 데다 화강암 지반이어서 진동에 취약한 반도체 공장 건설에 적합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물리적인 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다. TSMC는 투자금 100억 유로(약 15조 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50억 유로의 보조금을 독일 정부로부터 받았다. 지난해 인피니언도 10억 유로를 지원받아 신규 공장 건설에 나섰다. 지방정부도 인허가 과정 간소화와 인건비 지원 등으로 반도체 기업의 애로 사항 해결에 나서고 있다. ‘용인 실리콘밸리’의 공장 건설이 토지 보상, 인허가, 용수 문제 등으로 늦어지는 우리는 드레스덴의 성공을 눈여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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