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흑인 차별적 발언을 했다가 외려 ‘역풍’을 맞았다. 이런 가운데 해리스 부통령은 실리콘밸리와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지지를 속속 확보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7월 31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미흑인언론인협회(NABJ) 초청 토론에서 해리스 부통령을 겨냥해 “나는 몇 년 전 갑자기 그가 흑인으로 변신하기 전까지 그가 흑인인 줄 몰랐다”며 “그는 항상 인도계였고, 갑자기 흑인으로 돌아섰다. 누군가 이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인종적 특징을 정치적 이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현장의 흑인 청중은 야유를 보냈고 외신들은 일제히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CNN방송은 “해리스는 ‘갑자기’ 흑인으로 정체성을 밝히기 시작한 것이 아니고 정치에 입문하기 훨씬 전부터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남아시아계 혈통도 존중했다”고 꼬집었다. 해리스 부통령의 아버지는 자메이카 출신, 어머니는 인도 출신이다.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난 해리스 부통령은 흑인 명문 대학인 하워드대를 졸업하고 흑인 여성 커뮤니티, 흑인 법학생 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미 역사상 첫 여성 흑인 백악관 대변인인 커린 잔피에어도 “그(트럼프)가 방금 한 말은 혐오스럽고 모욕적”이라며 “아무도 누군가에게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식별되는지 말할 권리는 없다”고 비판했다.
외신들은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흑인들의 표심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의 발언에 대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분열된 국가의 통합을 촉구했던 트럼프가 정적에 대한 개인적 공격, 언론인에 대한 적대를 이어갈 것이라는 분명한 시그널”이라고 논평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흑인 여대생 친목 단체인 ‘시그마 감마 로 소사이어티’ 행사에서 “오늘 트럼프의 연설은 똑같이 오래된 쇼, 분열과 무례함이었다”며 과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을 향해 인종차별 발언을 일삼았던 전례를 언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거친 입은 해리스 부통령의 빠른 지지율 상승세에서 비롯된 위기감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선거 분석 기관인 ‘쿡폴리티컬리포트(CPR)’가 지난 60일간 실시된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여론조사 15개를 집계한 바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지지율 격차를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절반으로 줄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 사퇴를 선언한 7월 21일 기준 트럼프 전 대통령(47.4%)은 바이든 대통령(44.7%)을 2.7%포인트 앞섰는데 해리스 부통령이 이 격차를 1.3%포인트로 좁혔다. 민주당 ‘집토끼’ 지지층인 여성·흑인·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소폭 오른 덕이다.
해리스 부통령을 향한 지지 선언은 계속되고 있다. 이날 미국 최대 자동차산업 노조인 UAW는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민주당 큰손’인 리드 호프먼 링크드인 공동창업자를 포함한 100명 이상의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 투자자들도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밝혔다. 앞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실리콘밸리 기업인과 투자자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것에 맞불을 놓은 셈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