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같이 산 기간이 길수록 만성질환을 함께 앓을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노인의 만성질환이 배우자의 만성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이러한 연관성을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고혈압‧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은 한 번 발생하면 완치가 쉽지 않다. 다양한 합병증을 초래해 사망에 이를 수 있으므로 꾸준한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만성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전체 사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4.3%에 달했다. 만성질환 유병률도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어 체계적인 예방 및 관리가 요구되고 있다.
선행 연구들은 부부가 생활습관을 공유하면서 식습관‧신체활동‧치료준수도 등의 측면에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부부 단위로 이러한 요인을 개선하기 위한 접근방식이 만성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모두 효과적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특정 질환에서 부부간 연관성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를 대부분의 만성질환으로 확대 적용할 수 있을지 장기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밝혀낸 연구는 없었다.
연구팀은 노년기에 단일질환이 아닌 누적된 질병 부담이 배우자의 질병 부담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기 위해 노부부 814쌍을 8년간 추적‧관찰했다. 한국인의 인지노화와 치매를 전향적으로 살펴본 KLOSCAD(Korean Longitudinal Study on Cognitive Aging and Dementi) 참여자 중 60세 이상 부부를 대상자로 삼았다. 부부 각각의 만성질환으로 인한 질병 부담을 누적 질환 평가척도(CIRS)로 평가한 다음 학력, 알코올 섭취량, 수면의 질, 신체 활동, 우울 정도 등 질병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인자를 포괄적으로 평가했다.
분석 결과 부부 중 한 사람의 CIRS 점수가 1점 높을수록 배우자의 8년 후 CIRS 점수는 0.154점 높아졌다. 또 8년의 추적 기간 중 CIRS 점수가 1점 상승할 때마다 배우자의 점수도 0.126점 동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부 중 한 사람의 현재 질병 수준 뿐 아니라 향후 그 변화 정도도 배우자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질병 부담 정도가 클 때 더욱 뚜렷했다.
배우자가 현재 여러가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은 향후 많은 만성질환을 앓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번 연구는 만성질환 관리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아 여러 만성질환을 앓을수록 배우자의 만성질환 위험도 증가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혔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만성질환을 앓는 개인 뿐만 아니라 배우자까지 진단·치료·교육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김 교수는 “노년층의 경우 만성질환 부담이 높고 관리를 소홀히 하기 쉽다”며 “진료나 보건사업을 부부 단위로 설계해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만성질환이 배우자의 건강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소개하면 만성질환 관리에 대한 동기를 강화하는 데도 효과적”이라며 “부부가 상호 팀이 되어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면 기존 치료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BMC Medicine’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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