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입대를 앞뒀던 2015년 이맘때, 어머니는 숨이 가쁘다며 서울의 한 대학병원 심장내과를 찾았다. 예고한 시간이 지나도록 검사가 끝나지 않아 발을 구르던 찰나 ‘출입 제한’이 적힌 자동문 뒤에서 나타난 전문의는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추가 검사를 권유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던 기간 내내 의사는 생사여탈권을 쥔 절대자처럼 느껴졌고 성심껏 진료해준 고마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의사라는 이름 뒤에 꼭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붙여 부르는 건 그때의 감사한 마음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강대강’으로 치닫는 의대 정원 증원 논의를 보면서 국민을 갈라치는 ‘나쁜 정치’가 또다시 도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은 현장을 떠난 전공의를 향해 사법 절차를 경고하면서 “국민을 이길 수 없다” “국민을 상대로 한 협박” 등 강경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의료 현장 복귀를 설득하기보다 전공의들의 반발심만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인 데다 ‘의사’ 대 ‘비(非)의사’의 대결 구도로 몰고갈 수 있어 꼭 필요했던 말인지, 다른 저의를 품은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사회 각계각층을 편을 갈라 특정 세력을 악마화한 방식은 한국 사회에 무거운 짐을 남겼다. 적폐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자행했던 편 가르기 정치는 증오를 부추기며 사회 곳곳에서 갈등을 양산했고 문제는 더욱 곪게 만들었다. 국민을 ‘부자’와 ‘빈자’로 양분해나가면서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했던 중대재해처벌법과 임대차 3법의 여파로 한국 경제와 사회는 지금도 신음하고 있다.
정부가 붕괴 위기에 처한 지역·필수의료를 재건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의료 개혁을 관철해가는 과정에서 초래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정책 추진에 따른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 상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뒤탈 없는’ 개혁이 정부의 진짜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의료 개혁 이후 병원에서 환자와 의사가 적의 없는 신뢰로 마주하는 것까지 국가의 역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공의들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걸맞은 책임감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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