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개혁이라는 ‘대변환’
1945년 해방 당시 한국은 지주의 나라였다.
통계, 사실, 데이터를 우선 보자. 1945년 말 전국에 있는 농지 3곳 중 2곳은 지주가 있는 소작지였다. 1948년 조선은행 조사부가 집필한 ‘조선경제연보’를 보면 당시 전국 농지 232만 정보(약 319억 7700만㎡, 1정보는 약 3000평=9900㎡) 중 소작지는 147만 정보로 비중이 63.4%였다. 농가 비중으로 보면 전체 206만 5477호 중 172만 2253호(83.4%)가 어떤 형태로든 소작을 했다. 전국 논과 밭 3분의 2가 소작지, 전국 농민 5분의 4가 소작인이었다.
농지개혁은 이 ‘만석꾼의 나라’를 완전히 뒤바꿨다. 선대로부터 상속받은 땅으로 지대(地代)를 받아 호의호식하던 지주 계급의 몰락을 불러왔고 일반 시민 계층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도전과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entrepreneur)에게는 커다란 도약의 계기가 됐다. 도대체 농지개혁이 무엇이길래, 어떻게 진행됐길래 이런 역사적 대변환을 불러온 것일까.
◇농지개혁이란 일반적으로 농지개혁은 정부가 지주로부터 농지를 몰수해 농민에게 분배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대표적으로 ‘무상 몰수, 무상 분배’와 ‘유상 몰수, 유상 분배’ 방식이 있다. 전자는 지주에게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땅을 받아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한다. 다분히 공산주의적인 이 방식은 북한과 중국에서 시행됐다. 우리나라는 ‘유상 몰수, 유상 분배’를 택했다. 정부가 지주에게 돈을 주고 받은 땅을 농민들에게 대가를 받고 배분하는 방식이다. 지주는 설령 돈을 받더라도 땅을 팔지 않을 선택권이 없다는 점에서, 이 방법 또한 자본주의 원칙에는 위배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공산주의가 위협적으로 확산하면서 농지개혁은 세계 각국 정부의 과제가 됐다. |
지주의 부(富)를 농민에게 재분배
대한민국의 농지개혁법(정부 개정안)은 1950년 2월 2일 국회를 통과해 같은 해 3월 10일 공포됐다. 3정보(약 2만 9700㎡)를 초과한 농지를 보유한 모든 지주로부터 토지를 강제로 매수해 농민에게 유상으로 판매하는 것이 골자였다. 농지를 강제 매수할 때는 몰수 토지에서 나오는 생산물을 현금으로 환산한 금액의 150%를 지가(地價)로 매겨 지주에게 지급했다. 예를 들어 연간 2억 원 분량의 쌀을 생산하는 2만 평 분량의 토지를 몰수하면 지주에게는 3억 원을 줬다.
농민은 3정보 이내의 면적으로 농지를 분배받을 수 있었다. 무상 분배가 아닌 유상 분배였으므로, 지주로부터 몰수한 농지를 가지고 있는 정부에 토지 인수 금액을 내야 했다. 지가(地價)는 몰수 때와 마찬가지로 농지 생산량의 150%였다. 연간 5000만 원 분량의 쌀을 생산해낼 수 있는 5000평짜리 농지를 분배받으면 7500만 원 만큼을 납부해야 했던 것이다.
이 농지개혁 방식은 향후 한국 사회에 막대한 부의 재분배 효과를 불러왔다. 지주 계급의 몰락과 자작농, 즉 일반 농민 및 시민 계층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앞선 세 문단을 주의 깊게 읽은 독자라면 무언가 이상하다 느낄 것이다. 정부는 농지 평년 생산량의 150%에 해당하는 돈을 지주에게 지불했다. 농민에게 팔 때도 생산량의 150% 만큼을 받았다. 같은 금액의 돈이 오고 가면 부의 재분배가 일어나기 어렵다. 농지개혁은 어떻게 해서 지주 계급의 몰락으로 이어졌던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디테일’을 봐야 한다.
지주의 수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정부는 지주에게 농지 몰수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했지만 농민에게는 분배 대금을 쌀이나 보리 같은 현물로 받았다. 그리고 농민은 농지의 구입 대금을 5년에 걸쳐 분할 상환할 수 있었다. 경제학을 아는 이라면 여기서 떠올리는 단어가 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
만약 5년 동안 인플레이션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면 부의 재분배는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경제에 그런 시기가 있었던가. 당시는 해방 직후였고, 더군다나 전쟁통이었다. 한국전쟁은 농지개혁법이 공포된지 불과 3달 뒤 발발했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물가 상승을 수반한다. 연도별 농산물 가격 변동 추이를 보면 1950년 1석(약 180ℓ)당 29.1원이었던 정조(쌀)는 1951년 115.7원으로 뛰더니 1952년에는 419.4원이 돼버렸다. 1956년에는 정조 1석 가격이 1336.7원이었다.
농지개혁법에 따라 지주는 과거 5년 동안의 평균 농산물 가격으로 지가(地價)를 산정받아 대금을 수령했다. 과거 물가가 상당 부분 반영되므로 물가가 오르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군다나 법정 기한인 5년 내에 지가(地價)에 상응하는 현물을 전부 납부하는 농민은 거의 없었다. 국토가 황폐화된 전쟁통·전쟁 직후였기 때문이다. 1957년을 기준으로 할 때 상환을 완료한 농가 비율은 41.6%에 그쳤다. 상환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지주들은 물가 상승에 따른 손해를 추가적으로 봤다.
끝이 아니다. 지주들의 수난은 이어졌다. 정부는 농지를 분배받은 농민에게 현물로 지가(地價)를 납부받을 때 시장 가격이 아닌 법정 곡가(穀價)로 값을 매겼다. 문제는 지주에게 현금으로 보상을 할 때에도 이 법정 곡가를 따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쌀 한 포대가 1만 원에 판매되는데 법정 곡가가 5000원이면 정부는 지주에게 5000원만 지급했다.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가 1978년 펴낸 ‘한국양정사’에 따르면 법정 곡가를 시장가격으로 나눈 값은 △1950년 0.51 △1951년 0.51 △1952년 0.44 △1953년 0.68 등 줄곧 1을 밑돌았다. 그만큼 지주에게 보상이 덜 됐다는 뜻이다.
한 가지 더. 1955년 이후에는 직전 5년 동안의 평균 법정 곡가로 지주에게 지가(地價)를 지급하지 않았다. 대신 1950년~1954년으로 기간을 고정해 곡식 가격을 산정한 후 지가(地價)를 지급했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1960년에 비로소 지가(地價)를 납부받는다고 치면 막심한 재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방식이었다. 이 문제를 파고든 전용덕 대구대 무역학과 교수가 집필한 ‘한국경제의 성장과 제도변화(1997)’에 따르면 1955년 이후의 보상률은 전체의 50.2%에 달한다. 막대한 피해를 본 지주가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지가(地價) 현금 지급과 전후 인플레이션 △법정 곡가 △가격 고정이라는 ‘삼 박자’가 한국의 지주 계급을 와해시켰다. 농지개혁이 실질적으로 마무리된 1960년대 초반 이후 집필된 신문 기사나 논문, 서적에서는 ‘재벌’ 같은 단어는 쉽게 볼 수 있지만 ‘지주 계급’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해방 전후까지 한국 사회를 주름잡았던 지주라는 지배 계급이 사실상 소멸했다. 지주 중 일부는 일제가 남기고 간 귀속기업체를 인수해 재벌로 성장했지만 이는 지대를 받아 생존하는 지주자본이 생산과 혁신을 이끄는 산업자본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였다.
※[이덕연의 경제멘터리] 농지개혁편 2회로 계속.
※1회가 농지개혁이 지주 계급에 미친 영향을 살펴봤다면 2회는 ①일반 농민에게 미친 영향 ②기업가와 산업자본 형성에 준 영향 ③농지개혁에 대한 오해와 진실 ④일본·대만의 사례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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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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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화, 최광 등, 기적의 한국경제 70년사: 농지개혁에서 K-POP까지 중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과 초석”(북앤피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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