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무역 항로 대동맥인 홍해가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불안감이 높아지자 글로벌 석유 시장이 점점 지역 밀착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홍해 불안에 따른 화물 운임 상승에 각국이 중동지역에서 원유와 석유제품을 조달할 때와 자국과 좀더 가까운 생산지에서 원유를 조달할 때의 가격차가 좁아졌고, 가까운 곳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4일 세계 석유 시장이 점점 미국·유럽 등 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시장과 페르시아만·인도양·동아시아 등을 포괄하는 시장으로 점점 양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원유 트레이더들의 분석을 인용해 유럽의 일부 정유사들이 지난달 이라크산 원유를 전혀 사들이지 않는 대신 북해산, 남미 가이아나산 원유를 사들였다고 전했다. 석유제품 시장에서도 이 같은 단절이 나타나, 아시아 시장에서는 납사 가격이 유럽산 제품을 조달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에 지난주 2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석유제품 중에서는 인도·중동 지역 정유소에서 생산돼 유럽으로 가는 경유·항공유, 아시아로 가는 유럽산 중유·납사가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해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면서 수에즈운하를 통해 석유나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비중이 급감한 탓이다. 물류 정보업체 케이플러 집계를 보면 지난달 수에즈운하를 통과한 유조선 숫자는 홍해 사태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에 비해 23% 줄었다. 같은 기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은 73%,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은 65%씩 급감했다.
통신은 “홍해 혼란의 여파로 운송 비용이 높아지면서 유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정유업체들도 이 영향으로 가능한 한 자국에서 가까운 현지로 이동하도록 장려한다”고 전했다. 케이플러에 따르면 중동에서 북유럽으로 가는 수에즈맥스급 유조선의 운임은 12월 중순 이후 약 50% 뛰었다. 같은 기간 북해 브렌트유 유가도 약 8% 상승했다. 반대로 지난달 아시아로 향하는 미국산 원유의 선적량도 전월대비 3분의 1 이상 감소했다.
통신은 석유 시장의 지역화가 영구적으로 정착하지는 않겠지만, 한국·인도 등 석유를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이 원유 공급선을 다변화하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말 후티 반군이 당초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던 러시아산 원유를 실은 유조선을 공격, 되레 해상 물류의 차질이 더 커질 위험성마저 제기되는 실정이다.
정유업계는 시장 상황이 급변할 때마다 대응하기 위한 유연성이 제한돼, 수익성이 잠식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빅토르 카토나 케이플러 수석 원유분석가는 “수송하기 쉬운 화물 쪽으로 몰리는 것은 상업적으로 타당하며, 홍해 사태로 화물 운임이 고공행진 하는 한 그럴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시장이 현재로서는 공급 안정성과 이익 극대화 사이에서 어려운 균형 잡기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반니 스타우노보 UBS 분석가는 “공급처 다변화는 아직 가능하지만, 그 비용이 높아졌다. 이를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없는 한 정유사들의 마진이 잠식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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