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척급 선수들이 미국으로 떠나지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새 시즌 전망은 어둡지 않다. 라이징 스타 후보군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유현조(18·삼천리)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신인상 후보 중 한 명이다. 아시안게임 개인전 메달 때문만은 아니다. 15년 골프 구력과 그만큼이나 오래 지키고 있는 습관의 힘, 2년 넘는 드라이버 입스(샷 하기 전 불안 증세)를 견뎌낸 이력 등 ‘숨은 근거’가 많다.
최근 만난 유현조는 “2024년에는 정규 투어 진출과 신인상을 받고 싶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다. 첫 우승하면 연말 시상식 때 상도 주던데 그것도 늘 꿈꿨다”고 했다. ‘우승 없는 신인상’과 ‘1승에도 신인상 불발’ 중에서 골라야 한다면 어쩌겠느냐는 물음에는 “아무래도 1승을 골라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각국 강자들이 모인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골프에서 유현조는 몰아치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최종 라운드 전반 9홀까지도 5위권 밖에 있었는데 후반 9홀에 버디만 6개를 쏟아부은 끝에 개인전 동메달을 따냈다. 개인전 메달리스트 중 아마추어 신분은 유현조뿐이었다. 유현조가 최종일 작성한 7언더파 덕분에 한국은 단체전 은메달도 합작할 수 있었다.
유현조는 “선배 언니들이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잘해오지 않았나. 메달 없이 돌아가면 한국 여자골프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날 것 같았다”며 “전반 끝났을 때 우리가 4~5등 정도였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버디를 하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올라가야 한다’ 이 생각뿐이었다”고 돌아봤다.
아시안게임 뒤 이어진 KLPGA 정회원 테스트(3위)와 ‘지옥의 라운드’라는 시드전(5위)까지 무난하게 통과해 유현조는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최종일 강한 비바람에 우박까지 떨어지는 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2024시즌 출전권을 확보했다.
유현조는 네 살 때 놀이로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백을 멘 엄마는 딸을 유모차에 실려 놀이교실에 보냈다. 유현조는 “1주일에 세 번, 한 번에 30분씩 하는 거여서 그저 즐겁게 배웠던 것 같다. 싫었으면 안 간다고 했을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운영하는 스크린골프장에서 놀면서 기량을 쌓았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골프 선수의 꿈을 키웠다. 처음 대회에 나갔을 때는 120타를 쳤는데 이후 1년도 안 돼 우승자가 됐다. 유현조는 “실력이 차츰 늘어가는 느낌이 재밌고 좋았다. 늘려고 더 연습을 열심히 하고 원하는 만큼 실력이 늘면 재밌어서 또 했다”고 기억했다.
유현조는 ‘잠’에 진심이다. 잠드는 시각이 오후 10시를 넘긴 적이 없다. 보통 9시에 눕는다고. 새벽형 인간인 엄마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길을 들여줘 8시만 돼도 슬슬 눈이 감긴다. 잠을 보약 삼아서인지 유현조는 매사에 생기가 넘친다.
지난해 유현조는 추천 선수로 나간 한 대회에서 당시 장타 센세이션을 일으키던 윤이나와 비슷한 거리를 보내 골프 팬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갤러리들 사이에서 ‘저 선수는 대체 무슨 힘으로 저렇게 치는 거야?’라는 말이 나왔다. 270야드는 거뜬한 장타 비결로 유현조는 ‘팔뚝’을 얘기했다. “특히 ‘이두’ 쪽이 두꺼워서 보기에 싫은데 장타를 치는 힘은 그 싫은 팔뚝에서 나오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
유현조는 장타도 좋지만 ‘밝음’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고 싶단다. 그리고 더 있다. “‘저기서 저렇게 치면 어쩌자는 거지?’라는 의심이 들다가도 결국 ‘저게 되네’ 하는 반응이 나오는 골프를 하겠습니다. 일차원적이지 않고 여러 가지 방법과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골프요.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좋은 영향력을 드리는 골프 선수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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