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탈원전 국가인 이탈리아가 치솟는 에너지 비용에 결국 원전 재도입을 추진하고 나섰다. 스웨덴·독일 등이 원전을 다시 짓거나 재도입 검토에 나서는 가운데 이탈리아도 이 흐름에 합류한 것으로 다른 국가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현지 통신사 안사(ANSA)에 따르면 마테오 살비니(사진) 이탈리아 부총리 겸 인프라교통부 장관은 11일(현지 시간) 로마에서 열린 원자력 콘퍼런스에서 “내년부터 원전 재도입을 시작하면 2032년이면 원전 가동이 가능하다”며 “원전은 안전하고 깨끗하며 지속 가능한 에너지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정부 내 최고위급 인사가 원전 재도입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달 ‘지속 가능한 원자력을 위한 국가 플랫폼’ 회의를 열고 7개월 내 원전 재도입 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탈리아는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사태 이후 국민투표를 거쳐 탈원전을 결의했다. 1990년 마지막 원전을 폐쇄하고 세계 첫 탈원전 국가가 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에너지 비용을 감당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원전 재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해 이탈리아는 에너지 수입에 1000억 유로(약 142조 원)를 썼다. 2021년 대비 2배에 이르는 수치다. 전력 45.6%를 액화천연가스(LNG)에 의존하는 와중에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중단하며 타격이 컸다. 전기료도 2021년 대비 40% 이상 올랐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한 달 260㎾h(킬로와트시) 사용 기준 이탈리아 가정용 전기료는 약 13만 원에 달한다. 이는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높고 한국 대비 3.6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에 전기요금 고지서를 불태우는 시위가 벌어지는 등 민심도 원전 재도입으로 기울고 있다. 2011년 국민투표 당시 탈원전 찬성률은 94.1%에 달했지만 현재는 50% 선이 위태롭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분위기가 비슷하다. 1980년부터 단계적 원전 폐기를 진행해온 스웨덴은 최근 원전 10기 이상을 새로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원자력 의존도를 낮추려던 프랑스도 2035년까지 신규 원전 6기를 만들기로 했다. 올 4월 마지막 원전 가동을 중단한 독일에서는 벌써부터 연방정부 내부에서 원전 재도입 논의가 나온다. 독일은 에너지 순수출 국가였으나 원전 가동 중단 이후 순수입국으로 전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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