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실적 악화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R&D) 투자에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이 대중(對中) 첨단 기술 제재 수위를 계속 높여가는 상황에서 중국 기업들이 반도체 공급망 자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2일 중국 증시에 상장된 146개 반도체 관련 업체의 80%가 올해 상반기 R&D 투자를 전년 동기 대비 확대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기간 이익 감소를 겪은 기업의 비율은 70%에 달했다. 실제로 이들 반도체 기업의 상반기 매출 총액은 2201억 위안(약 40조 원), 순이익은 153억 위안으로 각각 7%, 58% 감소했다. 중국 반도체 기업 대부분이 스마트폰·PC 시장의 침체로 실적 부진을 겪으면서도 투자 지출을 더 늘린 셈이다.
중국 최대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 SMIC가 대표적이다. SMIC의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 순이익은 52% 줄었지만 R&D 지출은 5% 늘었다. SMIC는 최근 화웨이가 내놓은 5세대(5G) 통신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에 7㎚(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를 공급했다. 이에 SMIC가 중국의 기술 접근을 차단하는 미국의 제재에도 기술 자립에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루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 정부도 반도체 국산화를 위한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기업 투자를 뒷받침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사상 최대인 3000억 위안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이는 첨단산업 육성책인 ‘중국 제조 2025’에 따른 국책펀드의 3기 투자로, 앞서 추진된 1기(1400억 위안), 2기(2000억 위안)와 비교해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
미국의 대중 기술 규제 이후 중국의 반도체 국산화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중국 반도체 시장 규모가 시황 악화로 전년 대비 5% 감소한 반면 자국산 반도체 판매액은 14% 늘어났다. 중국 시장 내 자국산 반도체 비중은 40%를 넘어섰다. 중국반도체협회 직접회로설계분회 이사장인 웨이샤오쥔 칭화대 교수는 “미국의 대중 규제 강화가 중국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며 “중국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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