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열렸던 ‘2023 그래미 시상식’ 당시 진행자가 대뜸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당신에게는 세계 최고의 팬들이 있는데 그들이 계란 가격도 낮추게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스위프트는 “그럴 거예요”라고 답했다. 당시는 조류독감의 영향으로 계란 가격이 치솟던 시기. 대중음악 시상식에서 계란값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니 인플레이션이 당시 미국인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넉 달 정도 지난 지금 미국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스위프트 팬들의 영향력(?) 덕분인지 당시 4달러를 넘던 12개들이 계란 한 팩 가격은 현재 2.5달러 수준으로 낮아졌다. 5월 한 달간 계란값의 낙폭은 16%에 이른다. 계란을 넘어 물가 전반에 대한 낙관론도 커지는 분위기다. 1년 뒤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조사한 미시간대 1년 인플레이션 기대는 6월 3.3%를 기록해 전월 4.2%에서 한 달 만에 0.9%포인트나 떨어졌다. 식품 가격과 기름값이 낮아진 덕분이다. 미국은 이대로 곧장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될까. 그렇게 단정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현재 미국의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핵심 요인은 계란이나 기름, 공급망 같은 문제가 아니라 임금이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고용이 미국 경제의 엔진”이라고 표현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다. 파월 의장은 “채용이 늘어나니 임금이 오르고, 이는 소비 증가의 원인이 된다”며 “이는 또 채용 증가를 부른다”고 말했다. 소비가 늘면 채용도 늘지만 가격도 오른다. 파월 의장은 결국 인플레이션 향방은 인력 부족 문제가 해소되는지에 달렸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조 바이든 행정부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은 막대한 채용 수요를 예고하고 있다. 법안은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고 인프라 건설에 정부가 투자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했다. 지난해 8월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이 통과된 후 전 세계 기업이 발표한 미국 내 신규 투자는 총 2000억 달러 이상으로 2019년보다 20배 늘었다.
최근 만난 맨해튼의 한 기업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미국 중부에 공장을 둔 한 기업은 최근 바이든 정부의 정책 기류를 타고 글로벌 업체들이 주변에 공장을 세우는 바람에 인력 빼가기에 노출됐다. 점점 인력 메우기가 어려워지면서 다양한 경로로 채용을 진행했는데 어느 날 보니 인력들의 일부는 인근에 있는 자사 협력 업체에서 일하던 이들이더라는 것이다. 이 업체의 공급망 전체로 보면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괴게 된 격이다.
앞으로 사정이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인력 부족은 광범위하다. 미국 건설산업협회는 인프라 법안으로 50만 명의 인력 부족을 전망하고 있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2030년까지 미국 반도체 엔지니어가 30만 명 부족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이 국경을 대폭 개방해 이민자들을 폭넓게 받아들이면 이야기가 달라질까. 장기적으로는 나아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몇 년 내 효과가 나타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생산성 하락 문제 때문이다. 원래 10명이 하루 동안 10개의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인력이 유출된 자리에 비숙련공을 채우면 10명이 일을 해도 하루 생산량은 5개로 줄어들 수 있다. 원래대로 생산량을 10개로 맞추려면 투입 인력을 20명으로 늘려야 하는 셈이다. 생산성 감소는 결국 생산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인력 부족과 생산성 하락이라는 이중의 덫이 그대로라면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마냥 낙관하기는 어렵다.
이는 곧 미국의 고금리 기조가 계속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달러 강세, 원화 약세 흐름도 더 오랫동안 우리 경제를 괴롭힐 가능성이 적지 않다. 뉴욕 증시는 인공지능(AI) 기대와 인플레이션 낙관론으로 상승 행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이런 분위기 이면에 미국 기준금리가 6%까지 오를 것으로 보는 이코노미스트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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