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현장 책임자 위주로 처벌하던 산업재해에 대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까지 처벌 범위를 확대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해 근로자의 안전을 확보하자는 취지였다.
기업에는 비상이 걸렸다. 각종 컨설팅을 통해 법에서 요구하는 조치를 취하려고 부산하게 움직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2022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874명을 기록했다. 법 시행 이전인 2021년의 828명에 비해 46명이 더 희생됐다.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22년 사망자 중 재해 조사 대상자는 644명이었다. 이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고용 사업장에서 돌아가신 분이 256명에 달했다.
검찰은 지난 한 해 9건의 사고를 중대재해처벌법위반으로 기소했다. 이 중 사망 사고 피해자는 모두 8명이었다. 나머지 248명의 피해자에 대한 사건은 미완의 상태로 해를 넘긴 것이다.
근로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처벌을 강화했는데 오히려 상황은 더 안 좋아진 것이다. 이유가 뭘까. 먼저 사업주 측에서 법률 자체에 관심 없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합리적인 의심은 아니다. 현장이 아닌 경영진까지 처벌되는 상황인데 이를 무시할 만큼의 강심장을 가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이 스스로의 안전을 챙기지 않았다는 의심도 가능하다. 역시 합리적인 의심은 아니다. 목숨만큼 소중한 것이 없는데 근로자 스스로 이를 무시할 리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한다는 의심이다. 법률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무엇이 범죄인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 잘못인지 알아야 조치를 취하고 고칠 수 있을 텐데 그것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업주로서는 적확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이 부분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사건이 미완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업주의 잘못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근로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는지 연결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사 기관에서도 결정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규칙을 통해 현장에서 취해야 할 조치들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아직 그러한 기준이 없다. 하루 빨리 기준을 마련해야 할 이유다.
내년 1월에는 50인 미만 고용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전담 법무팀을 가지고 있는 대규모 사업장에 비해 사실상 무방비·무대책의 상태에 놓여 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도, 기업으로 하여금 안전조치를 취하게 하기 위해서도 하루 빨리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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