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원, 도산한 회사의 전직 대표, 여행을 즐기는 가장, 수필가. 1946년생 이태용 전 아주그룹 부회장의 이력이다. 그는 1970년대부터 2017년까지 40년 넘는 시간 동안 굵직한 자리에 앉아 때로는 금융으로, 때로는 자동차 기업에서, 또 때로는 철강 기업에서 성장하는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데 평생을 바쳐왔다. 이런 그의 삶을 드라마 ‘미생’처럼 녹여낸 수필 ‘종합상사맨의 삶, 도전과 응전’이 출간됐다.
그는 한국은행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국책은행으로서 한국은행의 위상은 대단했다. 저자는 은행에서 3개 부서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조사2부에서 가장 오래 근무했다. 엘리트 중앙은행원의 꿈을 갖고 있었으나 산업계로 한국은행원들을 이동시키려는 정부의 정책 여파로 자연스럽게 대우그룹 기획 조정실로 이직한다. 여기서 그의 첫 번째 도전이 시작된 셈이다. 그는 이 곳에서 30대 중후반 호주에서 5년간 지내며 국내 중화학 공업 제품을 수출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당시를 “나의 도전과 응전과 실패는 내 젊은 날의 두렷한 발자취로 내 마음에 깊숙이 각인되어있다”고 회상한다.
80년대 초는 우리나라 수출의 뼈대 중 하나인 중화학 공업 수출의 태동기다. 당시 지사장으로 근무한 저자는 실제로 드라마 ‘미생’ 속 주인공들처럼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만나 미팅을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우리의 중화학 제품을 해외로 내보낸다. 특히 1999년 대우자동차 수출부문장 시절 정보수집, 접촉, 협상, 계약, 선적, 도착 후 인도 등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한국형 장갑차의 수출을 실현하기 위해 악전고투한 과정은 마치 상사맨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처럼 흥미진진하다.
최근 2030은 종종 성실한 월급쟁이의 삶을 조롱한다. 인터넷 속에는 주식, 코인으로 하루아침에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쥔 사람들의 일화를 매일 들을 수 있는 데다, 실패할지언정 스타트업을 차려 어린 나이에 CEO의 꿈을 이루는 방법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큰 성공을 일구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50대에 들어서면 ‘적당한’ 벌이를 하며 굴곡없는 하루를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삶은 결국 ‘잭팟’이 아닌 ‘성실함’의 결과물이다. 저자의 삶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업무 속에서 꾸준히 ‘도전과 응전’을 반복하며 우상향한다. 우상향은 코인처럼 급격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를 움직이는 대기업처럼 느리고 천천히 절정에 이른다. 매일 불안과 초조함으로 미래를 준비하다 낙오한 2030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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